최근 금리가 급등하면서 은행과 대기업 간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종전엔 은행이 돈을 써 달라고 애원해도 대기업이 듣는 척 마는 척 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대기업이 '을'의 입장에서 은행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은행 예금에서 돈이 계속 빠져 나가면서 대기업에 대출해 줄 재원이 부족한 탓이다.

은행들은 이런 저런 이유에서 대출 금리를 올리며 금리 상승에 따른 부담을 가계뿐 아니라 기업으로 떠넘기고 있다.


◆대기업 금융권 대출 요청 잇따라

대기업 자금담당자들은 한동안 멈췄던 은행 방문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시 늘리기 시작했다.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대출) 사태 여파에다 채권시장 급랭이 겹쳐 자금줄이 말라 버렸기 때문이다.

회사채 최대 매입처인 채권형 펀드 규모는 2006년 말 50조원에서 지난해 말엔 40조원으로 1년 새 10조원이나 줄어 대기업조차 회사채 발행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대기업 자금담당자들은 급하게 써야 하는 운영 자금을 구하고 향후 투자 확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은행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은행의 대기업 대출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파르게 늘고 있다.

2006년까지만 하더라도 대기업들은 상반기 1조1000억원,하반기 2000억원 등 모두 1조3000억원의 은행 대출을 상환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엔 2조6000억원을 빌렸으며,하반기 들어선 11월까지 6조원의 은행 대출을 받았다.

대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여의치 않자 보험사나 상호저축은행 대출까지 마다하지 않고 있다.

서울 소재 한 상호저축은행의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 자금담당자들이 대출 좀 쓰자고 잇달아 찾아오고 있다"고 7일 말했다.

그는 "찾아오는 대기업들은 예전이라면 저축은행을 쳐다보지도 않았을 그런 기업"이라고 전했다.


◆뛰는 금리는 기업에 전가될 듯

은행들은 금리 상승으로 겉으론 울상이지만 속으론 기회라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한 은행의 임원은 "시중에 자금이 마르고 금리가 뛸수록 대기업 등 각 금융 주체의 은행 의존도는 높아지게 돼 있다"며 "장기적으로 금리 상승은 은행에 순이자마진(NIM) 개선의 기회를 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각 은행들이 수익성 향상을 올 한 해 주요 경영 목표로 설정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 신한 등 주요 은행들은 증권시장으로의 자금 이탈이 올 한 해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대출을 늘리기 보다는 우량 기업을 중심으로 여신을 운용하고,금리를 높여 적용하면 수익의 질이 개선될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있다.

당장 신용등급 BBB급 기업들은 지난해보다 1∼2% 오른 연 9∼10% 정도의 금리를 적용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나마 대출을 해준다고 해도 신청금액의 일부만을 승인해 주는 사례가 다반사다.

은행과 저축은행이 포함된 채권단은 한 건설회사의 PF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 만기를 지난해 말 연장하면서 금리를 연 10%대 중반으로 두 배 이상 높이기도 했다.

은행들은 수신금리 상승폭이 워낙 가파른 탓에 대출금리 인상에도 당분간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