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화(鄭奇和) < 전남대 교수·경제학 >

지난 연말 정치인과 고위공직자,경제인,사형수와 공안사범 등이 포함된 특별사면이 단행됐다.

이번 특별사면은 정권 말에 행해진 데다 여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어 '막판 떨이' 사면이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사면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 개정된 사면법이 올 3월부터 효력이 발생하는데 그 틈새를 이용해 사면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법개정 정신이 훼손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사면을 통해 권력자의 측근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게 아니다.

미국의 경우에도 클린턴 정부의 임기가 만료되기 몇 시간 전에 대통령이 연루된 화이트게이트 사건으로 유죄판결 받은 인사를 비롯해 대통령 도서관 건설에 많은 기부를 했던 인사가 사면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나라에서나 권력자의 사면권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건 나름대로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면은 잠재적 범죄자에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내기 때문에 매우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한다.

범죄자들은 범죄로 인한 이익이 비용보다 클 때 죄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처벌수준은 범죄로 인한 이익이 없는 수준이 돼야 한다.

그런데 범죄자를 처벌하는데 비용이 든다.

범죄자를 수용하는데도 비용이 들고,범죄자가 경제적 활동을 했다면 얻었을 이익만큼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따라서 범죄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범죄자가 경제활동에 복귀해 사회적 이익을 크게 할 수 있다면 형기(刑期)를 줄이는 사면은 경제적으로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들과는 달리 기업가에 대한 사면은 바람직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 있어서도 사면은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범법행위에 따른 예상 비용이 낮아져 범죄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사면은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허용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행해진 특별사면을 보면 이와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 너무 빈번하게 이뤄져 특별사면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1980년대 이후 모든 대통령은 취임기념으로 대규모 특별사면을 행했다.

또한 1980년 이후 4개년을 제외하면 매년 2~3회의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그리고 정권의 임기 말에는 예외없이 특별사면이 따랐다.

말 그대로 특별사면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일상적인 사면인 셈이다.

미국의 경우에는 매년 600명 정도의 사면청원을 받지만 실제 사면이 이뤄지는 경우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때에 따라서는 2만∼3만명의 특별사면이 이뤄져 보통 사면과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다.

사면권의 남용을 막기 위해 사면법이 개정돼 올 3월부터 특별사면은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지만 기대만큼 효과를 가져다줄지 의문이다.

물론 법무부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향후 사면 업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시행하겠다고 밝혀 과거보다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면위원회가 설치된 미국에서 사면에 대한 논란이 그치지 않은 것을 보면 남용의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면권 남용의 가능성을 줄이는 확실한 방법은 특별사면을 폐지하거나 말 그대로 지극히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하는 것이다.

사면권은 과거 절대군주의 특권에서 유래된 것으로 국민통합을 위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특별사면은 국민을 통합시키기보다 이를 해치는 효과가 크다고 여겨진다.

일반사면을 통해서도 국민통합의 효과나 법집행의 효율성을 충분히 높일 수 있다.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법과 원칙이 지켜지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매번 되풀이되던 취임기념 특별사면이 이뤄질지,그리고 이뤄진다면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규모에서 이뤄질지의 여부가 향후 새 정부의 법과 원칙 준수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