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제 정무직 보름만에 사퇴시키더니 이번엔 임기보장 강조

'이명박 정부'는 출범 후 법에 임기가 정해진 정무직들을 어떻게 할까.

헌법기관장인 감사원장,장관급인 공정거래위원장과 금감위원장,사정기관의 대명사격인 검찰총장 등등.임기직인 경찰청장은 인수위와 청와대의 상호 합의로 후임자가 내정됐지만 나머지 자리는 아직 임기가 남아 있다.

최근 인수위 관계자는 이명박 당선인이 2월 취임식 이후 이들의 거취문제를 본격 논의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자연스럽게 담게 될 것인지,아니면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업무 수행을 하게 한다'는 임기제 본래 취지의 법규가 존중될지 관심거리다.

이와 관련,청와대는 지난해 말 임명된 전윤철 감사원장과 임채진 검찰총장 등 '임기제 정무직'의 임기 보장을 요구했지만 정작 현 정부도 이 원칙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 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 초,이남기 공정위원장이 3월6일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김각영 검찰총장(3월9일)과 이근영 금감위원장(3월13일)이 줄지어 물러났다.

새 대통령 취임 후 보름 만에 남아 있던 주요 정무직은 모두 '정리'됐다.

김 전 총장은 임기가 1년8개월 남아 있었으며,이 전 공정위원장과 이 전 금감위원장은 퇴임을 불과 6개월 앞두고 있었다.

형식은 모두 자진사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김 전 총장은 TV에 생중계된 '검사와 대화'에서 "현 검찰 상층부를 믿을 수 없다"는 대통령의 말이 나오자 즉각 물러났다.

이 전 공정위원장도 정찬용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적임자를 물색 중"이라며 공개적으로 사퇴를 종용한 직후 물러났다.

당선자 시절부터 "임기직은 임기존중"이라는 원칙을 내세운 노 대통령의 말을 믿고 임기를 채우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던 이 전 금감위원장도 "본인이 알아서 판단해주길 바란다"는 청와대 쪽의 흔들기가 계속되면서 일주일 만에 옷을 벗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