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이름은 참 외우기 어렵다.라벨을 읽다보면 온통 낯선 외국어뿐이고,와인 브랜드와 와이너리(양조업체)명을 구분하는 일도 쉽지만은 않다.'1865'처럼 쉬운 이름의 와인이 인기를 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신년 모임 때 한번쯤 마셔볼 만한 특징적인 이름을 가진 와인들을 모아봤다.

이탈리아산(産) '베라짜노 끼안티 클라시코'(사진)는 뉴욕시와 인연이 깊은 와인이다.뉴욕항을 처음 발견한 이가 바로 베라짜노라는 이탈리아 장군인 것.토스카나의 주요 와인 산지인 키안티에 영지와 함께 포도원을 갖고 있던 지오반니 디 베라짜노(Giovanni di Verrazzano)는 신대륙 탐험에 나서 1524년 뉴욕을 발견했다.

훗날 뉴욕시엔 베라짜노 장군의 모험과 도전 정신을 기린 베라짜노 다리(Verrazzano Narrows Bridge)가 세워졌고,뉴요커들은 매년 열리는 뉴욕 마라톤 대회를 이 다리에서 시작한다.

칠레 와인 중에서 '명품'으로 통하는 '알마비바' 역시 귀족 이름에서 따왔다.프랑스 극작가인 보마셰르의 작품 '피가로의 결혼'에 등장하는 백작 이름이 알마비바다.칠레 와인이 왜 하필 프랑스 희곡에서 이름을 찾았을까.사연은 '알마비바'가 칠레의 대표 와인 양조업체인 콘차이 토로와 프랑스의 와인 명가 바롱 필립 드 로쉴드가 합작해 만든 와인이라는 데서 시작된다.

바롱 필립의 창립자인 필립 드 로쉴드 남작은 젊은 시절 연극 배우로도 정열적으로 활약했고,특히 피가로의 결혼을 좋아했다고 한다.이런 이유에서 로쉴드 가문의 현 주인인 필리핀 드 로쉴드 여사는 칠레에서 자신의 첫 '명품'을 내놓으면서 아버지를 떠올리며 '알마비바'란 이름을 붙였다.

세계적 와인 컨설턴트이자 양조자인 미셸 롤랑의 '작품'으로 유명한 아르헨티나산 '이스카이'는 잉카어로 '둘'이라는 뜻이다.말벡과 메를로 두 품종을 절반씩 블렌딩했다는 의미이자,미셸 롤랑과 다니엘 피에라는 두 명의 세계적인 와인 메이커(미셸 롤랑은 2004년산에만 관여했음)의 손을 거쳤다는 자긍심의 표현이기도 하다.비슷한 방식으로 이름 지은 것 중에 칠레 콘차이 토로사가 최신식 양조 기술로 탄생시킨 '트리오'를 꼽을 수 있다.카베르네 소비뇽,쉬라,카베르네 프랑 등 세 개의 품종을 섞었는데 이 같은 블렌딩은 처음으로 시도하는 도전인지라 와인 이름을 '셋'을 의미하는 '트리오'로 지었다.

샴페인 중에선 '뀌베 써 윈스턴 처칠'이 기억하기에 좋다.영국의 수상 처칠은 늘 폴로저라는 샴페인을 마시곤 했는데 폴로저사는 처칠이 죽자 그와의 인연을 기려 처칠의 이름을 딴 샴페인을 내놨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