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라도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쓸쓸해 보이게 마련이다.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도 예외가 아니다.빌 게이츠는 전자전시회 'CES 2008' 개막 전날인 지난 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베네티안 호텔에서 기조연설을 했다.MS 회장으로서는 마지막 CES 기조연설이다.빌 게이츠는 오는 7월 회장직에서 물러나 게이츠재단 일에 몰두할 예정이다.

빌 게이츠는 기조연설에서 MS의 새로운 기술과 전략을 소개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그는 "5년 안에 인간과 기계 간의 소통에 중대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동작으로 제어할 수 있는 유리탁자형 PC신제품 '서피스'를 시연했다.포드의 2009년형 자동차에 음성 선곡,음성 다이얼링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계획과 베이징 올림픽을 인터넷으로 중계하겠다는 계획. '엑스박스' 게임기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즐기게 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게 없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3500석 홀을 가득 메운 청중의 반응은 미지근했다.놀랄 만큼 새로운 건 없다는 반응이 우세했다. "MS한테 더 이상 새로운 걸 기대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빌 게이츠는 누가 뭐라 해도 세계 IT업계의 '황제'이다.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스무 살 때인 1975년 MS를 설립한 이래 30년 이상 세계 IT업계를 이끌어왔다. 하지만 세월을 누가 이기겠는가.빌 게이츠의 마지막 작품인 '윈도비스타'는 사실상 실패했다.그래픽,보안 등의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는 데도 소비자들은 전 버전인 '윈도XP'만 찾고 있다.

MS는 지금 구글과 애플에 쫓기고 있다.구글은 이미 세계 인터넷 시장을 평정했다.MS의 MSN은 경쟁 상대가 안된다.야후조차 창업자인 제리 양이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해 구글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판이다.동갑내기인 스티브 잡스 애플 회장은 어떤가.MP3플레이어 '아이팟'과 혁신적 휴대폰 '아이폰'을 내놓은 뒤부터 기세에서 빌 게이츠를 압도하고 있다.

빌 게이츠의 퇴장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폐쇄'와 '독점'의 시대가 가고 '개방'과 '공존'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얘기다.아직도 PC는 MS '윈도'가 지배하고 있다.그러나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에서 MS의 지배력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구글은 지난해 개방형 휴대폰 플랫폼 '안드로이드'를 내놓아 MS에 강펀치를 날렸다.

미국 언론은 빌 게이츠의 마지막 CES 기조연설을 '백조의 노래(swan song)'에 비유했다.백조가 죽기 전에 부른다는 아름다운 노래를 연상시켰던 모양이다.빌 게이츠는 무대에서 기타를 메고 '기타 히어로'의 배경음악을 연주하려고 했다.그러나 기타리스트 슬래쉬가 대신 연주했다.그래도 청중들은 빌 게이츠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광현 IT부장 k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