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놀랐다."

삼성전자 IR팀장인 주우식 부사장이 15일 4분기 실적 브리핑을 시작하면서 한 말이다.각 사업부문의 경영 상황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는 IR팀에도 4분기 실적은 예상을 뛰어넘은 '어닝 서프라이즈'였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건 메모리반도체 시황이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1년 전까지만 해도 5∼6달러였던 512Mb DDR2 D램 가격이 지난 4분기에는 1달러 미만으로 떨어졌다.메모리 반도체가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었던 삼성전자로서는 초긴장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고 스스로도 놀랐을 만큼의 실적을 올린 것.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문이 "회사 역사상 최고의 실적(주우식 부사장)"을 기록한 덕분이다.LCD,휴대폰,TV 등 반도체 이외의 주력제품들이 세계 정상의 수준에 올라 '반도체 충격 흡수' 역할을 해줌으로써,반도체 시황에 따라 실적의 명암이 엇갈리던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LCD총괄의 경우 '1년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2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매출은 4조4600억원으로 전분기에 비해 11%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37% 성장해 9200억원을 기록했다.시황도 좋았던 데다 TV,모니터,노트북 등 3대 수요처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할 만큼 시장 지배력이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삼성전자는 설명했다.

휴대폰도 시장의 평균 성장률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성장,분기 사상 최대치인 4630만대를 팔아치웠다.주 부사장은 "신흥시장을 겨냥한 저가폰뿐 아니라 500만 화소폰,3G폰 등 선진시장용 제품도 고르게 팔렸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이에 따라 휴대폰은 4분기에 마케팅 지출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두 자릿수의 영업이익률(11%)을 기록했다.

디지털미디어(DM) 총괄도 본사기준으로는 130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지만 연결기준으로는 3900억원의 흑자가 났다.2006년 소니를 제치고 달성한 세계 TV시장 1위의 지위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 부사장은 "그렇다고 반도체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시황 악화로) 씨름장 전체가 가라앉은 것이지,씨름장 안에서는 다 넘어뜨리고 있다"고 표현했다.그는 "대만 업체들이 매출의 70∼80%에 해당하는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에서 9%(매출 4조9100억원,영업이익 4300억원)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한 건 황창규 사장에게 박수를 쳐야할 일"이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올해 삼성전자 실적의 향방은 역시 반도체에 의해 결정될 전망이다.나머지 사업들은 이미 정상의 수준에 올라 변수가 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주 부사장은 우선 "상반기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새로운 애플리케이션의 등장으로 수요가 늘어나고는 있지만 워낙 투자를 늘린 업체들이 많아 공급과잉 상황이 해소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이유에서다.하지만 "하반기부터는 공급 사이드의 구조조정이 가시화될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주 부사장은 내다봤다.그는 "가격이 너무 떨어져 기존의 200㎜ 웨이퍼로는 도저히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며 "200㎜ 업체가 시장에서 빠른 속도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또 "독일 키몬다와 일부 대만업체들이 사용하고 있는 D램 생산방식(트렌치 방식)은 기술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있어 추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 있다"며 "하반기부터는 상당히 가파르게 반도체 시장이 개선될 수 있다.반도체에도 서광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