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경제부처를 개편하면서 내세운 최우선 가치는 '효율성'이다.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쳐 '기획재정부'를 만들기로 한 것은 예산 편성권에서 나오는 힘을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기획과 조정 업무를 매끄럽게 이끌어 가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아울러 예산 국고 세제 등 국가 재정과 관련된 기능을 한 군데로 모아 재정 건전성 통제를 효율화하려는 뜻도 담았다고 덧붙였다.

금융에 대한 '정책+감독' 기능을 합친 금융위원회를 출범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지금껏 각각의 기능이 재경부 금감위 금융감독원 등으로 분산돼 영역 다툼으로 일이 늦어지고 금융회사의 불편을 초래하던 것을 바로잡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렇게 권한을 몰아주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국정 운영의 또 다른 가치가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기획재정부가 각 부처를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전횡'이 걱정될 뿐 아니라 '막강' 금융위원회 출범으로 '관치금융' 부활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말 안 들으면 예산을 깎아버린다'는 과거 재정경제원 시절을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다.


◆정책 수립.집행 빨라진다

새 정부는 현재의 기획예산처를 모태로 경제정책 국고 세제 국제금융(외국환거래 건전성 감독 기능은 금융위) 등 재경부의 주요 기능을 합쳐 기획재정부를 신설키로 했다.예산처의 재정전략 기능과 재경부의 경제정책.조정,국무조정실의 경제정책조정 기능 등을 묶어 기획 조정 창구를 단일화한다.아울러 예산운용 성과관리(예산처),세제 국고(재경부),복권기금운영(국무조정실) 등 흩어져 있는 재정기능도 하나로 합쳐지게 됐다.

대신 재경부가 하고 있던 '금융정책'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은 금융위원회로,'소비자정책'은 공정거래위원회로 각각 이관되고 '공적자금관리' 기능은 폐지키로 했다.아울러 국세심판원(재경부 관할)과 지방세심판위원회를 통합,국무총리 소속 조세심판원으로 개편한다.

이로써 정부의 경제 정책 수립과 집행은 지금보다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16일 브리핑에서 박재완 인수위 정부혁신.규제개혁 TF팀장은 "재경원에서 예산 기능을 떼어낸 뒤 10년간 국가의 중.장기 비전과 전력을 수립하고 미래에 체계적으로 대비하는 기능이 미흡했다"며 "정책기획.조정 기능이 대통령비서실 국무총리실 재경부 예산처 등으로 분산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껏 '예산권을 빼앗긴' 경제부처의 정책 조정 기능은 사실상 무력화됐다.이를 해결한다며 청와대 총리실 등에 '옥상옥(屋上屋)'을 쌓았지만 의견 조율 비용만 늘었지 정책조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인수위는 그래서 다시 경제부처에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기획재정부가 '예산권'을 지렛대 삼아 정책 조정 기능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라는 것이다.


◆금감원 위상 축소될 듯

금감위와 재경부 금융정책국,국제금융국의 외환거래 건전성 감독기능,금융정보분석원 등은 금융위원회로 합쳐진다.금융위원회는 금감위처럼 9인으로 구성된 합의체 위원회 형태로 운영된다.또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의 겸임을 금지하고,금융위원장은 장관급으로,금감원장은 민간인으로 각각 임명한다는 방침이다.

곽승준 인수위원은 "주로 민간인들에게 상임위원을 맡기고 가능하다면 외국인도 선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이는 정부조직과 민간조직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약 250명의 공무원으로 출범할 금융위는 명실상부한 '금융정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재경부가 갖고 있던 금융법령 제.개정권,금감위의 인.허가 및 감독규정 제.개정권 등 금융정책과 감독 권한을 한손에 쥐게 됐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산업은행 기업은행 주택금융공사 등 국책금융회사의 감독기능,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의 관리감독 업무도 금융위로 이관된다.

반면 그동안 '금융검찰' 역할을 해왔던 금융감독원의 위상은 낮아지고 역할과 기능도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의 겸임이 금지됨에 따라 금감원은 금융위의 단순 집행기구로 전락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그동안 감독정책 수립,금융회사 인·허가 및 제재 관련 업무 등에 관한 최종 의사결정은 금감위가 내렸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금감원이 행사했다.하지만 향후에는 이런 권한이 점차 사라지고 '금융회사 검사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금감원의 우려다.

차기현/장진모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