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생(許龜生) <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 부원장·역사학 >

모든 관료조직은 일단 만들어지면 스스로 팽창하는 경향이 있다.조직의 존재이유를 보다 확실하게 각인시키기 위해 자꾸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내고 예산과 인원을 늘리려고 하기 때문이다.또한 해당조직의 관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서유럽의 공공복지 조직이 그 대표적인 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약 25년간 서유럽 국가들은 유례 없는 경제적 번영을 누렸다.실업률도 3% 이하에 불과해 실질적인 완전고용을 달성했다.이러한 경제적 성공을 바탕으로 이들 국가의 사회복지 지출이 급격하게 팽창했으며 1975년에 이르러 국내총생산의 20%를 넘어섰다.이 기간 중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정부조직은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졌다.여기에 제동을 건 것은 느닷없이 불어닥친 경제위기였다.복지국가를 선도하던 영국은 급기야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이 시대 집권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나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등의 우파정권들은 '작지만 강한 정부'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 복지 예산의 축소를 추진했다.이를 두고 흔히들 복지국가의 위기라고 표현하지만 1980년대와 1990년대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을 보면 복지예산의 절대액수와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감소하지 않았다.단지 복지예산 증가율이 약간 주춤한 것뿐이었다.이를 두고 '복지국가의 불가역성(不可逆性)'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말할 필요 없이 관료조직의 자기 팽창성향이 여기에 한몫을 했다.

16일 인수위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안에 따르면 무려 7개 부처가 폐지 또는 통폐합될 운명에 처했다.이들 부처의 관료들이나 관련 이익단체의 반발과 저항을 어떻게 이겨내는가에 최종 결과가 달려 있지만 무려 정부조직의 3분의 1을 줄이려는 시도는 비장한 결단력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일이다.나아가 이번 인수위의 조직개편안은 단지 정부조직의 비대한 몸집을 줄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질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데 주안점이 놓여 있는 것 같다.다시 말해 쓸데없는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정부 서비스 전달방식을 시장친화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자유주의자들에 따르면 사람마다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다르다.그러므로 국가나 사회가 가치를 서열화하고 사람들의 필요를 일방적으로 재단해 자원을 할당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대신에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시장에 가서 자신이 가진 재화와 서비스를 가장 좋은 가격에 팔고 또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장 좋은 가격에 살 수 있으면 최상의 복리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왜냐하면 자기 자신의 기호와 필요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자유주의자들도 인정하듯이 완전한 시장은 없으며 시장이 실패할 수도 있다.

우리 시대는 완전한 자유시장도 있을 수 없고 국가가 모든 것을 관리하는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도 존립할 수 없다.단지 국가의 영역과 시장의 영역을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개발독재시대에 이어 지난 10년간의 우리 경제는 대체로 국가의 영역을 중요시해왔다.이에 반해 차기정부는 시장의 역할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계속해서 천명하고 있다.이는 이명박 당선인과 인수위가 지난 10년간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통제가 경제활동의 자유를 제약했을 뿐 아니라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적절하게 제공하지 못했다고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비록 인수위의 개편방향이 옳다고 하더라도 이 같은 과감한 시도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부처별로 자율성을 강화시키고 탄력적으로 조직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또한 날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는 국민들의 서비스 수요를 실시간에 파악하고 적기에 공급할 수 있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정부의 '효율성'이 확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