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태래(否極泰來).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시련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며 내놓은 신년사 문구다.'막힌 비색이 극에 이르면 트인 운수가 온다'는 뜻으로 '좋지 않은 일들이 지나고 나면 좋은 일이 온다'로 풀이된다.이는 지난해 '보복폭행'사건 등 개인적 문제로 곤욕을 치른 김 회장은 물론 해외사업의 가시적 성과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한화그룹 차원에서도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올 투자 두 배로 늘린다

지난해 12월28일 김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재계 총수들의 회동에 참석한 직 후 곧바로 본사에 들러 그룹 경영진을 불러 모았다.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경제 살리기에 대한 새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했다"며 "우리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글로벌 경영을 구체화시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이 경영활동을 본격 재개하면서 큰 그림에 대한 의욕을 내비친 것이다.김 회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올해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지난 해보다 100% 가까이 늘릴 것"이라며 "인수ㆍ합병(M&A) 등 해외투자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의욕과 자신감은 한화그룹의 올 사업계획에 고스란히 반영됐다.한화는 올해 매출 및 세전이익 목표를 각각 29조원과 1조2000억원으로 정했다.또 지난해보다 100% 늘어난 2조원을 투자키로 하는 등 공격적인 경영계획을 수립했다.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최근 열린 '2008년 글로벌경영 전략회의'에서다.

김 회장은 이 자리에서 파도가 거칠수록 이를 잘 활용하는 지혜와 도전정신이 필요하다며 '항해론'을 언급했다.그는 "바다를 건널 때 거친 파도를 헤쳐나가지 못하면 배가 뒤집어 지지만 반대로 파도를 잘 이용하면 목적지까지 훨씬 빨리 갈 수 있다"고 말했다.험난한 경영 외적 변수를 잘 극복하면 오히려 글로벌 시장에서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한화는 대대적인 투자 확대와 함께 글로벌 시장을 향한 인재 영입 및 신규 채용 규모부터 늘릴 방침이다.당장 올해 신규 채용(대졸 포함) 계획은 지난해보다 30% 증가한 3000명 이상에 달한다.아울러 지속적인 해외사업 진출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주요 계열사별로 연내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는 것을 경영목표의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했다.

◆해외사업 성과물 줄줄이 대기

한화는 그동안 글로벌 경영 노력이 올해부터 가시적인 결과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한화 L&C(옛 한화종합화학)는 이미 지난해 말 미국의 아즈델사(社) 지분 100%를 사빅 이노베이티브 플라스틱(옛 GE플라스틱)과 PPG인더스트리로부터 6500만달러에 인수,본격적인 해외사업에 나섰다.

한화석유화학은 이달 14일 핵심사업인 비닐 부문 경쟁력 강화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중국 저장성 닝보시의 다셰 경제기술개발구에 3600억원을 투자해 석유화학 플랜트를 짓기로 했다.이 회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7조원 규모의 합작사 설립을 위해 협상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한화건설은 유가 상승에 따라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동지역의 플랜트사업 확대에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국내 주택건설 위주로 형성되어 있는 사업구조를 다각화해 국제적인 건설회사로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한화는 최근 항공기부품 1억달러 수출 달성을 계기로 올해에도 항공기부품 사업분야에서 국제적인 신뢰를 구축할 계획이다.

또 금융부문에서는 대한생명이 중국 베이징에 사무소를 개소하고 중국 보험시장 진입을 위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한화증권은 이미 상하이에 사무소를 개설하고,중국 최대 증권사인 해통증권과 포괄적 업무제휴 계약을 체결해 아시아 최대시장인 중국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아울러 글로벌 경영의 실속을 한층 높이기 위한 전략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다.선진국 외에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아시아 및 유럽의 이머징마켓을 중심으로 4개 권역(동유럽,중앙아시아,중동,동남아시아)을 뽑은 뒤 다시 권역별로 11개국을 우선 검토지역으로 지정,사업 타당성 검토를 벌이는 중이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