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됐다.전반적으로 시스템을 합리화함으로써 운용의 효율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가 일관성 있게 읽힌다.이제부터는 우리 사회에서 특유하게 발현되는 바,시스템과 사람 사이의 긴장 및 갈등을 성숙하게 해소하고 현명하게 완화시켜갈 수 있는 묘안 모색이 관건이다.

대부분의 개념 속엔 해당 개념을 배태(胚胎)한 사회의 역사와 전통,그리고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실제로 시스템이란 개념 속엔 서구식 합리주의와 개인주의의 전통,사회변동 과정에서의 분화 및 전문화,공사(公私) 영역의 분리 등이 녹아들어 있다.

서구 선진국은 확실히 시스템 개념의 원조답게(?) '시스템 중심 사회'라 이름 붙여 손색이 없는 특징을 보유하고 있다.이 곳에서의 시스템 작동은 철저히 합리적 원칙과 공정한 규칙에 따라 운용된다.한마디로 사람이 바뀔 때마다 조직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대체로 발생하지 않는다.지위 혹은 역할에 부과된 업무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그 자리에 있느냐는 부차적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리더가 되든 조직은 각 지위체계에 할당된 업무를 수행해 가면 그만이요,각 지위체계는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호의존적 관계 하에서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해갈 수 있는 생존전략 구축에 몰두하게 마련이다.물론 이러한 시스템 구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우리네 경우는 '인사가 만사'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듯 시스템보다 사람 중심으로 움직여온 측면이 강하다.실제로 누가 장(長)이 되느냐에 따라 조직의 정체성이 변하고 극단적으로는 생사가 결정되기까지 하는 실례를 누차 목격해왔다.문제는 우리식 사람 중심의 작동 원리가 시스템 중심으로 전환해갈 것을 요구받을 경우,사회 각 분야에서 긴장과 갈등의 분출을 경험하게 되고 더불어 지극히 소모적인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된다는 사실일 게다.

멀리 돌아갈 것도 없이 사람 대(對) 시스템 사이의 간극과 충돌은 지난 참여정부 시절 유감없이 표출되어 왔다.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참여정부를 움직이는 건 시스템"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지만,실제로는 대통령 개인기가 시스템을 압도하는 상황이 빈번히 연출되면서,국민들로선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게 기대했던 소망과 희망이 우려 섞인 실망과 절망으로 바뀌어 가는 당혹감을 경험해야 했다.

애초부터 시스템 개념이 취약한 우리에게 사람이냐 시스템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이분법적(二分法的) 편 가르기의 오류에 다름 아닐 것이다.뿐만 아니라 시스템과 사람은 분석적 수준에선 구분이 가능하나 현실 속에선 긴밀히 연계되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시스템을 전면에 내세운다 해도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사람임을 모르는 바 아니요,사람을 강조한다 해도 개인은 시스템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상정할 수밖에 없기에,시스템과 사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최선의 선택은 시스템과 사람 사이의 조화이리란 생각이다.곧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 중심의 작동 원리를 고수하되 이에 내포된 편파성.임의성.불합리성의 한계를 끊임없이 경계하면서,우리에게 낯선 시스템 중심의 작동 원리를 수용하되 이것이 단지 '무늬만' 시스템에 머물지 않도록 현장에서 운용의 묘(妙)를 충분히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사람과 시스템의 장점을 지혜롭게 결합할 수 있는 미덕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정수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시스템의 공정한 작동을 실현해갈 수 있도록,개인의 이해관계를 넘어 공공의 선(善)을 우선시하는 성숙한 인재들이 적소에 배치된다면,선진국 고지를 향한 발걸음에도 가속이 붙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