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업은 '판박이' 상품은 '베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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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금융환경 변화에 대응해 독창적인 신상품을 내놓기 보다는 타행 상품 베끼기에 주력하고 있다.이 같은 베끼기 관행으로 금융소비자들은 차별화된 상품을 선택할 기회를 빼앗기고 은행은 타 금융권에 비해 경쟁력을 잃게 된다.금융전문가들은 이런 '상품 따라하기' 풍토는 은행 간 선의의 경쟁을 저해하고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끝없는 모방상품 출시
하나은행은 작년 5월 금리 상한대출 상품인 '이자 안전지대론'을 은행권 최초로 출시했다.시중금리가 아무리 올라도 대출이자는 일정 수준까지만 오르는 만큼 금리 상승기였던 당시 큰 인기를 모았다.하지만 신상품 출시에 따른 혜택은 많지 않았다.금융소비자들이 관심을 갖자 경쟁 은행들이 잇따라 유사 상품을 내놓은 탓이다.4개월 뒤 우리은행이 '입주자 안심론'이라는 이름으로 금리 상한대출 상품을 출시했고 이 달 들어 기업은행과 외환은행이 가세했다.국민은행과 농협 등도 상반기 중 금리 상한대출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전호영 하나은행 상품개발부 과장은 "어떤 신상품을 내놓더라도 3개월 정도만 지나면 모든 은행들이 이름만 바꿔서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출시해 은행 간 차별성이 사라진다"고 말했다.
은행들이 지난해 증권사 자산관리계좌(CMA)의 대항마로 내놓은 스윙상품도 따라하기 식 마케팅의 전형으로 꼽을 수 있다.기업은행이 지난해 8월 '힘 통장'이라는 스윙계좌를 내놓은 뒤 바로 다음 달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비슷한 상품을 선보였고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도 스윙상품 출시 대열에 가담했다.집값의 80%까지 대출을 해주는 모기지보험 연계대출 상품은 아예 일주일 간격으로 세 은행이 내놓기도 했다.
◆특허권에 대한 인식 부족
은행들이 독창적 상품 개발보다는 따라하기 식 영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는 특허권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하고 있어서다.특허청에 따르면 2006년 은행권의 특허 등록 건수는 11건에 그쳤다.2004년과 2005년에도 전체 은행들이 받은 특허권은 각각 12건과 10건에 불과했다.사실상 특허 무풍지대인 국내 금융시장에서 은행 간 베끼기 풍토는 만연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특허는 포괄적이지 않고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는 경향이 있어 특허를 교묘히 피해 유사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게 은행 상품 개발자들의 전언이다.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특허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장 파이를 키우기 위해 다른 은행의 특허 침해를 묵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특허 등록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점도 특허 불감증이 생기는 원인이 되고 있다.실제 특허 신청에서부터 등록까지는 평균 15개월가량 소요된다.트렌드에 맞춰 상품을 즉시 출시해야 하는 마케팅 생리상 특허 등록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특허를 포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전호영 하나은행 과장은 "특허로 인정받는 게 쉽지 않은 상황에서 획기적인 상품이 아니라면 특허 출원 없이 상품부터 출시하는 게 현실이다"며 "앞으로 특허 등록 절차가 간소화되면 은행들의 특허 출원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