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징후와 속설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24.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진짜 불황일까?
흔히 경기가 나쁠 때 미니스커트가 유행하고 립스틱이 잘 팔린다는 속설이 있다.

또 불황 때는 소주가 잘 팔리고 호황 때는 맥주가 잘 팔린다고 한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에겐 신사복지수라는 게 있어서 신사복이 잘 팔리면 경기가 좋아지고, 안 팔리면 경기가 나빠지는 신호로 본다.

'경제의 날씨'라고 할 경기는 통계청 한국은행 등이 발표하는 공식 통계로만 파악되는 게 아니다.

공식 통계는 몇 달 뒤에나 알 수 있으니, 지금 당장의 경기를 판단하는 데는 생활속의 변화 행태를 파악하는 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생활지표 중에는 잘못 알려졌거나 상황이 달라진 경우가 많다.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했거나 생활상의 변화로 근거가 바뀐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생활속에서 발견되는 경기징후와 속설들을 알아보자.

⊙ 헷갈리는 치마길이 이론

본래 미니스커트와 경기를 연관짓는 속설은 불황일 때 남성들이 이성을 바라볼 여유가 없어져 여성들이 남성의 눈길을 끌기 위해 짧은 치마를 입는다는 유혹이론에 근거했다.

그럴싸해 보이는 이 속설과 반대로 미국 경제학자 마브리는 1971년 스커트 길이가 짧아지면 주가가 오른다는 '치마길이 이론(skirt-length theory)'을 내놓았다.

1920년대, 1960년대 미국에서 짧은 치마가 유행할 때 주가가 좋았고 1930년대 대공황 때나 1970년대 오일쇼크 때는 되레 치마가 길어졌다는 것.

하지만 예전 속설도, 마브리의 이론도 경제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요즘 일반적인 견해다.

호·불황에 관계없이 미니스커트는 청바지와 더불어 언제나 사랑받는 패션의 스테디셀러로 통한다.

각선미가 자신 있는 여성들은 언제든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닌다.

경기가 나쁘면 립스틱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속설도 있다.호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여성들이 다양한 화장품 세트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 남성들의 눈에 가장 잘 띄고 가격도 싼 립스틱을 짙게 바른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역시 유행을 따르는 것이지 경기와는 무관하다고 한다.

⊙ 경기와 밀접한 생활지표들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신사복지수'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옷치장에 덜 민감한 가장들이 형편에 나빠지면 자기 옷 구입비부터 줄이고, 좋아지면 맨 나중에 자기 옷을 사기 때문.

또한 집집마다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 먼저 깨는 금융상품이 바로 보험이다.

보험은 가입기간이 긴 데다 먼 미래의 위험보다는 현재 살림살이가 더 급하기 때문이다.

소주와 맥주는 대체재로 여겨졌다.경기가 나쁠 땐 값싼 소주가, 경기가 좋으면 값비싼 맥주가 잘 팔렸던 것이다.

하지만 주류업계에선 별로 대체관계가 없다고 지적한다.

소주가 순해지고 맥주와의 가격차도 좁혀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기가 좋아지면 업소용 주류가, 나빠지면 가정용 주류가 많이 팔린다는 게 설득력 있다.

이 밖에 버려지는 애완견이 많으면 경기가 나빠진 증거이고,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는 성형외과에 환자가 많으면 경기가 좋아지는 징후로 해석된다.

⊙ 속설,가설,학설,그리고 정설

미니스커트와 경기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속설은 일부 우연을 입증된 이론인 양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속설(俗說)이란 세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입증되지 않은 이야기다.

가설(假說)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거나 이론을 펴나가기 위해 우선 이용하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고, 학문적으로 주장되는 이론이 학설(學說)이 된다.

이미 확정된 학설이나 일반적으로 옳다고 인정되고 있는 이론이 정설(定說)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대개 속설을 사실처럼 굳게 믿는 경향이 있다.

이는 주로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할 때, 짧은 상식을 갖고 서둘러 일반화하거나 추정하는 오류를 범할 때 생긴다.

당시 평균키였던 나폴레옹이 키가 작다고 여기거나, 아인슈타인이 왼손잡이인 것을 보면서 왼손잡이는 대개 머리가 좋다고 믿어버리는 것이 그런 사례다.

지난주 마중물논술에 소개된 '에스키모는 눈에 관해 수백개의 어휘가 있다'는 속설도 사실과 다르다.

사실이 아닌 속설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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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24. 미니스커트가 유행하면 진짜 불황일까?
그린스펀이 쓰레기통·세탁소를 기웃거렸다고?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금리정책을 결정하기 앞서 몇 가지 생활속의 지표를 살펴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표적인 것이 뉴욕시의 쓰레기 배출량, 세탁소 손님 수다.

뉴욕의 각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늘어나면 경기가 호전되는 징후로, 줄어들면 나빠지는 징후로 봤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려는 손님이 늘면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조짐으로 읽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여성의 속옷 매출이 경기와 밀접하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은 경기가 나쁘면 비싼 겉옷을 살 수 없으니 속옷이라도 잘 입자는 심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린스펀도 브래지어 판매량을 눈여겨 봤다고 한다.

경기를 보는 그들 나름의 숨은 기법인 셈이다.

대공황 직전 미국 증시가 호황일 때 월가의 한 증권회사 간부는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았다.

그의 신분을 알아본 구두닦이가 어떤 종목이 좋으냐고 물었다.

이에 그 간부는 곧바로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아치워 손해를 모면했다고 한다.

구두닦이까지 주식에 투자할 정도면 더이상 주식을 살 사람이 없다고 본 것이다.

이런 징후는 우리나라 증권시장에서도 곧잘 들어맞는다.

증권회사 객장에 아이를 업은 주부가 나타나면 주가가 상투라는 것.

국내 유명 펀드매니저는 신문 1면을 눈여겨 본다.

1면에 경기가 나아졌다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면 그때는 이미 경기가 호전된 지 한참 지난 뒤여서 오히려 경기 둔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다.

할인점 계산대의 줄 길이, 놀이공원 행락객 수, 고속도로 통행량 등도 경기를 곧잘 반영한다.

이 밖에 러브호텔의 은행 대출금 연체율(현금장사인 러브호텔이 연체할 정도면 경기가 나쁘다는 징후)도 경기 판단의 숨은 지표로 이용할 만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