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몰린 벤 버냉키…'젠틀 벤' NO, '빅 벤'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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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 벤(Gentle Ben)은 가고 빅 벤(Big Ben)은 오라.'
미국 경제위기 앞에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에 대한 월가의 주문이다.
경기침체 가시화로 시장이 충격을 받으면서 버냉키 의장의 위상도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 버냉키 의장이 미 하원 재무위원회에서 미국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어 신속한 경기부양책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직후 주가가 폭락하자 그의 위기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그의 발언이 경기침체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 해석돼 투자자들이 주식을 내던진 것이다.
이에 따라 버냉키 의장이 금리인하 조치를 너무 늦게 취해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로버트 헬러 전 FRB이사는 "중앙은행이 지금보다 더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다"며 "앨런 그린스펀 의장 시절에 0.25%포인트씩 소폭으로 금리를 인하하던 방식으로는 당면한 위기를 진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제 전문가들은 버냉키 의장이 계속 '갈 지(之)'자 행보를 보여 시장 참여자들에게 혼란을 초래했다고 비난하고 있다.버냉키는 지난 10일 워싱턴 금융ㆍ재정 여성인클럽에서 "실질적인 추가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지만 작년 12월까지만 해도 경제성장의 하향 위험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다.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사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작년 6월엔 "문제가 미국 경제 전체나 금융시장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며 사태를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또 사태가 본격화된 8월 초에도 "경제 성장에 미칠 위험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의 중점을 여전히 인플레이션 억제에 둔다"고 고집하다 이틀 뒤 BNP파리바 환매 중단사태가 터지자 부랴부랴 재할인율을 0.5%포인트 내렸다.
그의 의사결정 스타일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FRB 이사를 역임한 라일 그램리 이코노미스트는 "버냉키의 문제는 너무 젠틀하다는 것"이라며 "좀 더 용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금리를 결정하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전 12명의 위원들에게 먼저 발언토록 하고 경청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보여 위기대응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그의 이런 모습이 '학구파'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명문 스탠퍼드와 프린스턴대 교수를 역임한 버냉키는 미국 대공황 연구의 최고 권위자다.그가 1983년 발표한 대공황 논문은 경제학계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다.하지만 실제 위기 앞에선 '감'이 떨어지는 학자의 전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