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와 나의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그대와 내가 늘 처음처럼 사랑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사랑한다는 말을 지루하도록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마침내 낯익어서 낯설어져버린 서로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을 맞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그대 앞에서 내가,내 앞에서 그대가 늙어가서는 안 되겠기에

사랑과 시는 늙어서는 안 되겠기에

사랑과 시를 위해서는 짧았으면 싶지만 생활과 핏줄을 위해서는 질기게도 길어야 할, 당길 수도 늘릴 수도 없는 이 인생이라는 것

-이선영 '짧고도 길어야 할' 부분



사랑과 시를 위해서는 짧아야겠지만,생은 제 갈 길을 가고야 만다.

지우고 싶은 흔적들을 도처에 흩뿌려 놓고 늘 저 앞에서 히죽 웃고 있다.

사랑의 설렘이 닳고 닳아 두 마음이 무관심으로 엇갈릴 때에야 슬쩍 물러난다.

잔인하다.

그래도 생은 길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의 끝자락에서 빛 바랜 사랑의 사소함으로 막막한 허무를 조금은 밀어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끝내 온전히 붙잡을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인생이라는 것.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