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지난 20일 미 뉴저지주 중상층이 사는 데마레스트지역.영하 10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날씨지만 '오픈하우스(open house)'라는 푯말을 내건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집을 내놓았으니 보러 오라는 의미다.

그러나 푯말만 있을 뿐 정작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프리 스미스라는 집주인은 "맞벌이여서 매주 일요일에 오픈하우스를 하고 있지만 벌써 7개월째 집이 팔리지 않다보니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스미스 집에서 몇 골목 떨어진 곳에 새로 지은 멋들어진 집이 나온다.

역시 '집 팝니다(For Sale)'란 푯말이 붙어 있어 자세히 보니 빈 집이다.

잠시 후 그 집에 몇 사람이 들어 갔다가 나오더니 곧장 흩어진다.

혼자 남은 사람은 고개를 저으며 "이 사람들도 아니구나"라는 말을 내뱉는다.

집주인인 박모씨다.

미국에 이민온 지 12년 된 박씨가 집을 헐고 새 집을 짓기 시작한 것은 2006년 8월.집을 지어서 팔아 차액을 남길 생각이었다.

당시 주택경기가 좋지 않았지만 1년 후면 나아질 것이라는 업자들의 권유가 박씨의 용기를 자극했다.

그러나 웬걸.막상 집이 완공된 작년 8월 주택경기는 더 나빠졌고 집은 벌써 5개월째 팔릴 기미가 없다.

박씨가 처음에 내건 매도가격은 155만달러.여기서 10만달러는 깎아줄 요량이었다.

그뒤 두 달 동안 임자가 나서지 않자 145만달러로 조정했다.

해가 바뀌어도 입질이 뜸하자 하루라도 빨리 집을 팔고 보자는 생각에 지금은 137만달러까지 내렸다.

처음 설정한 155만달러가 다소 과욕이었다고 해도 불과 5개월 만에 18만달러나 값을 내린 셈이다.

박씨는 "1년 재산세만 2만달러에 매달 수천달러에 달하는 모기지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다소 싸게라도 집을 팔려고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국의 주택경기는 날씨만큼이나 한겨울이다.

거래는 오그라들고 있다.

집값 하락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거래가 안되니 매물만 쌓인다.

매물은 다시 집값 하락을 낳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최근엔 모기지를 제때 갚지 못해 압류당하는 집도 늘고 있어 매물압박을 더욱 심하게 하고 있다.

뉴저지주에서 벌써 30여년 가까이 부동산중개업을 한다는 베키 유씨는 "정확지는 않지만 오일쇼크를 겪은 1980년 이후 가장 큰 부동산 경기 불황인 것 같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도 박씨는 나은 편이다.

박씨 집 인근의 클로스터라는 동네에 사는 교민인 정모씨는 집이 송두리째 넘어갈 지경에 처했다.

정씨는 7년 전 50만달러를 주고 제법 큰 집을 장만했다.

17만달러는 자기돈으로 지불했고 나머지 33만달러는 모기지를 통해 해결했다.

문제가 된 것은 '홈 에쿼티 론(Home Equity Loan)'.정씨는 집을 살 때 모기지 담보(33만달러)를 제외한 17만달러어치의 주택담보를 제공하고 홈에쿼티론을 설정했다.

이는 집을 담보로 일정한 한도를 설정해준 뒤 마음대로 찾아쓰도록 하는 일종의 마이너스대출이다.

정씨가 처음 받은 한도는 10만달러.이후 집값이 오르면서 한도도 30만달러를 넘었다.

물론 한도가 늘어나도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정씨는 그러나 사업이 어려워지자 홈에쿼티론을 한도까지 사용했다.

결국 이자를 연체했고 집은 가압류를 당했다.

미국에서 주택은 ATM(현금 입출금기)과 비유된다.

다름아닌 홈에쿼티론 때문이다.

돈이 필요하면 여기서 꺼내쓴다.

집을 사는 데 돈을 모두 사용하는 모기지와 달리 홈에쿼티론은 대부분 소비에 사용된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이 내리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담보가치가 줄어들면서 은행들은 한도를 줄이게 된다.

곧장 소비억제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최근 홈에쿼티론 위기론과 그에 따른 소비위축론이 고개를 드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어쨌거나 주택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체념형 가구도 늘고 있다.

집을 웬만큼 싸게 내놓지 않으면 팔리지 않자 아예 매물을 거둬들이는 가구가 늘고 있는 것.실제 클로스터 지역의 매물은 작년 8월만 해도 187가구로 전체(2700가구)의 7%에 달했다.

지금은 123가구(5%)로 줄었다.

집 팔기를 포기한 가구가 많아서다.

이 지역 부동산중개인인 미셸 위키드씨는 "앞으로도 1~2년은 더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값을 크게 내려 처분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매물을 거둬들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같다"고 전했다.

미국 집값은 올해 10% 정도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비단 집을 담보로 대출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다.

거래가 줄면서 당장 부동산중개인들이 막막해졌다.

LA지역의 한인 부동산중개인 중 작년에 한 건의 계약도 성사시키지 못한 사람이 3분의 1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뉴욕 뉴저지 지역도 마찬가지.한때 30여명씩 붐볐던 부동산중개인 사무실은 요즘 10명이나 나오면 많은 편이다.

장사가 안되니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는 중개인이 많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다.

모기지시장이 사실상 정지되면서 모기지 종사자들이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다.

작년에만 줄잡아 6만여명이 직장을 잃었다.

올 들어서도 리먼브러더스가 모기지 자회사인 오로라론서비스 직원 1300명을 줄이기로 하는 등 감원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주택건설도 위축되면서 건설업 종사자와 건축자재 판매업자들도 역시 막다른 골목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의 일자리 8개 중 1개는 주택경기와 관련됐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니 최근 실업률이 높아지는 것도 역시 근인은 주택경기 침체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