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2001년보다 길고 강할 것" 진단

미국을 엄습하고 있는 경기침체는 1991년과 2001년에 겪은 두 번의 불황보다 길고 강할지 모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1일 인터넷판에서 전문가들의 전망을 통해 보도했다.

지난 25년간 미국 경제는 1차 걸프전이 터졌던 1990년대 초와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및 9·11테러가 터졌던 2001년 두 번의 경기침체를 경험했다.

이 두 번의 침체는 기간도 짧고 강도도 약했다.

하지만 주택경기 붕괴로 시작된 이번 침체는 금융사들의 막대한 손실과 고유가 및 곡물 가격 상승 등과 맞물려 이전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2001년 기술주 버블 붕괴로 발생한 경기침체는 8개월간 지속됐고 국내총생산(GDP)은 0.4% 감소했다.

당시 분기별 소비지출 증가세는 둔화됐지만 감소세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1990~1991년 사이 경기침체기에 미국 GDP는 1.3% 감소하고 소비지출도 위축됐으나 침체기간은 8개월로 짧았다.

이에 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야기된 이번 경기침체는 지난 25년간 겪어보지 못한 최악의 사태가 될 것이란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1970년대 이래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데다 금융사들의 막대한 부실로 신용이 우수한 대출자조차 돈을 빌리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이 대출을 기피하는 행태는 에너지와 식품 가격 급등,고용시장 위축 등과 맞물려 가계의 허리띠를 졸라매도록 위협해 오랜기간 경기 성장을 주도한 소비경기마저 둔화되는 양상이다.

하버드대학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는 "적어도 현재의 위기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다섯 차례 선진국을 강타했던 금융 충격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고 경고했다.

메릴린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이코노미스트는 "경기침체가 일어난다면 상황은 2001년보다 나쁠 것"이라며 "현재 부동산 시장 침체와 금융위기 정도가 이전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스웨스턴 대학의 로버트 고든 교수도 "주택시장과 모기지 시장의 문제 외에도 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이 일반 가정의 소비를 압박하고 있다"며 "경기 침체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으며 소비자들은 지난 두 차례의 불황보다 더 혹독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베스트먼트 테크놀로지의 로버트 바버라 이코노미스트도 "2001년과 달리 이번엔 소비자들이 침체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며 "경기침체가 가볍게 일어나더라도 소비지출에 대한 압력으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경기는 더욱 냉랭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더 큰 문제는 상황이 어느 정도까지 악화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이 지난 침체 때보다 높다는 것이다.

메릴랜드 대학의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는 "은행권의 손실규모 등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점이 사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며 "손실을 파악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문제 해결 시간도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