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주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비행기가 이상기류에 휘말려 활주로 위에 멈칫하고 있다.

그것이 불가항력적 자연현상 때문이라면 승객들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마땅히 받아들여야 할 일이지만 단지 교대하는 승무원 팀 간의 기세 싸움 탓으로 빚어진 것이라면 집단 항의거리가 된다.

새 정부 이명박호(號)의 모양새가 그러하다.

한 달 전 대통령 선거를 통해 국민다수는 파일럿을 비롯한 새 승무원 일동과 새 비행기로 갈아타기로 결정했다.

국민의 이름으로 낡은 팀에 퇴출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무슨 군소리가 오가는가?

당선인 인수위원회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쓴소리하자 통합신당 손학규 대표가 부적절함을 지적했고,청와대는 "정치지도자 자질" 문제를 언급했다.

누가 누구의 자질을 시비하나? "망할 놈의 헌법"이 보장한 한 달 남짓 임기끝까지 기죽지 않겠다고 오기 부리나? 한편 손 대표는 인수위 안에 대해 "토론 없이 밀어붙이기"를 거부하자 한나라당은 새 정부에 맡겨 주는 게 "도리"라고 받아쳤다.

장군 멍군 부르는 장기판이면 좋으련만 민생과 국가안보를 결정하는 정치판이 이 모양이니 국민을 우롱함이 이만저만 아니다.

인수위의 정부조직 개편안을 보면 하늘과 땅이 놀랄 만큼 거창한 게 아니다.

정부조직을 18부에서 5개 줄이고 공무원수를 95만1920명에서 고작 6951명 줄인다.

방향은 옳으나 강도는 미흡하다.

이 정도 내용을 갖고 과연 정부혁신안이라 내세울 수 있을지 의아스러운 것은 노무현 정부하에 증원된 공무원 수(계산에 따라선 9만 또는 5만여명)를 꺾기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정도로 온건한 사안을 가지고 시비가 많은가? 체면과 이해관계 때문이다.

큰 정부를 지향했던 현 정부는 작은 정부로의 U턴에 체면손상을 통감하고 특히 북한 퍼주기 통로 막힘을 우려한다.

일취월장하는 여성의 각계각층 진출이 계속돼야 나라가 산다.

그러나 문명국가권에 유례없는 간통죄,여성의 가정경제권 장악,호주제 폐지 등에도 불구하고 여성부 존치를 요구하는 측 역시 나름대로 이해관계 지킴이들일 뿐이다.

벌써 4월 국회의원선거 예비전이 벌어지고 있어 표밭 관리에 신경쓰는 정치꾼들이 정부조직 개편안에 어설프게 접근할 것이고,어리석은 유권자들은 국민의 진정한 이해관계를 잊고 지연ㆍ학연ㆍ인기영합적 발언에 부화뇌동할 것이다.

국민은 국가안보를 든든히 하고,법질서를 지켜주고,일자리 늘리고,세금 적게 물리는 정부를 바란다.

지난 대선에서 위태로운 안보,마음 안들면 안 지켜도 된다는 법,줄어든 고용,세금폭탄 공갈 때문에 승패가 갈렸다.

근대국가 성립 이전에는 정부조직이 간소했다.

정부 기능 다기화의 시대적 요구가 조직의 비대화를 낳았다.

일부국가에서는 정부의 순기능을 역기능이 압도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등장했다가 그 억압적 통치행태와 경제 비효율성 때문에 자멸했다.

현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유럽식 사회주의 체제가 아니던가?

조직을 줄여 저비용 정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국민 서비스 질을 높이는 게 보다 중요하다.

정책감사 때문에 복지부동하는 폐해도 없애야 한다.

정부조직개편 문제에 모두 공감하는 하나의 정답이 있을 수 없다.

지금 공개토론에 붙이자고 하지만 각계 집단들의 똘똘 뭉친 이해관계를 버리고 이성적으로 토론해 답을 얻기를 기대할 수 없다.

인수위 측은 여론을 귀담아 참조해야 하고,반대 측은 다음 대선을 기다려 승리해 고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