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 시인·문학평론가 >

영국의 한 남자가 2006년 9월17일 런던의 한 광장에서 자신이 쓰던 유명 브랜드 제품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태우는 이벤트를 벌였다.그동안 광고에 현혹돼 브랜드 중독자로 살아온 것에 부끄러워하고 분노하며,그 분노를 브랜드 화형식이라는 과격한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그는 그 뒤로 일체의 브랜드 제품을 버리고 시장과 자선단체 등에서 운영하는 상점들에서 값싼 옷과 신발들을 사서 쓰며 소박한 삶을 살아간다.그는 남이 만들어 자기에게 주입한 생각과 욕망이 아니라 제 생각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브랜드 화형식을 치른 것이다.

그는 자발적으로 불편한 삶을 받아들인 사람이다.더 많이 일하고,수고와 피로를 잊기 위해 더 많이 소비하고,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또 다시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이런 악순환의 조건을 마르쿠제는 '불행의 도취'라고 부르는데,이 불행의 도취에서 벗어나고자 결단을 내린 셈이다.그는 그 전보다 덜 쓰고 덜 일하는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화려하고 사치스런 소비생활을 위해 일에 미친 듯 빠져있는 대신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산책을 하고,그동안 찾지 못했던 미술관과 박물관을 더 많이 간다고 한다.

광고는 우리에게 '이것을 사라,저것을 사라''이렇게 살아라,저렇게 살아라''이것을 입으면 너는 더 멋진 사람이 될 것이다'고 속삭인다.광고는 행복과 자유,더 멋진 인생을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그 약속은 이행되지 않는 약속이다.그럼에도 우리는 광고에 설득당해 제품의 실질적 쓰임이나 불가피한 필요 때문이 아니라 잉여의 욕망과 정서적 만족감을 위해 그것을 구매한다.

우리는 비싼 명품을 사고,그러기 위해 일에 더 매달린다.더 비싼 것들을 사려면 더 많이 일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불량채무자가 되거나 파산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우리는 미친 사람처럼 일하고,그렇게 번 돈을 명품을 사는데 다 써버린다.그러나 손에 잡힐 것처럼 보이던 행복과 자유는 점점 더 멀어져간다.불만족과 욕망의 좌절은 깊어가고,광고는 그 불행감을 없애기 위해 다시 멋진 물건을 사라고 유혹한다.그렇게 우리는 '소비를 위해 노동을 하고,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소비해야 하는 끝없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분명한 것은 제품을 소비하거나 소유하는 것으로 얻는 만족감과 행복은 짧고,순간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더 근원적인 행복은 오히려 소박한 삶,덜 쓰고 덜 버는 느림과 비움의 삶에 있다.브랜드 화형식을 치른 닐 부어맨의 책을 읽으며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오솔길,산길,들길을 더 많이 찾아 걷겠다고 결심했다.

더 많이 걸어서 종아리의 근육을 탄탄하게 하고 더 건강한 발과 심장을 갖겠다.탁발승처럼 맨발로 걸으며 땅의 차가운 기운을 온몸으로 느껴보리라.나는 온몸으로 자유이니 더는 아무것도 나를 억지로 하기 싫은 일에 매이게 하지 못하리라.자유와 여유의 시간들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쓰리라.정원 가꾸기,멀리 사는 벗들을 불러 포도주 마시기,종일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나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을 틀어놓고 거기에 빠져 지내기,잠들기 전에는 정금(正金)같이 빛나는 생각들을 노트에 가득 연필로 옮겨 적어 10년 쯤 뒤에 책 한 권을 내리라.

생명으로 가득찬 이 지구에서 산다는 것은 나날이 기적이다.새벽마다 수천의 새들이 숲속에서 지저귀고,해가 떠오른다.봄마다 모란꽃은 붉게 피고,청명해진 가을하늘 위로는 매가 높이 날아오른다.나는 기적들을 온몸으로 충분히 누리며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