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본 국왕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을 때의 일이다.당시 만찬 자리에 수백만원짜리 '샤토 라투르 1982'가 올랐다.일본으로선 최고 귀빈 대접을 한 셈인데 만찬이 끝나고 일본 의전팀으로부터 한국 수행단에 "혹시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냐"는 항의 비슷한 질문이 있었다고 한다.그렇게 귀한 와인을 내놨는데 시음 소감 한마디도 없이 대수롭지 않게 마셔버릴 수 있느냐는 것.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 이에겐 아무 소용이 없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2. 와인 선물이 뜻밖의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완구 전문 업체인 A사 대표는 지난해 거래가 끊길 위기에 있던 미국 업체에 연말 선물로 와인을 보냈다.그리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의미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에 미국 회사 사장이 결혼한 연도와 똑같은 빈티지의 와인을 골랐다.결과는 계약 연장. 명절 때마다 와인을 선물하는 일이 꽤 보편화됐다.같은 5만원짜리라고 해도 와인과 생활용품 세트는 어쩐지 격이 달라보인다는 심리 덕분인지 백화점에서 와인은 정육과 청과 다음의 인기 선물 품목으로 자리잡았다.하지만 그런 만큼 와인 선물이 빛을 내기가 더 어려워진 것 또한 사실이다.무조건 가격에만 맞춰 아무렇게나 고른 선물은 감동을 주기 어렵다.서홍진 안양베네스트 식음팀장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의미있는 와인 선물을 할 수 있을지 들어봤다.

◆직업별 와인 선물 요령

상대방의 평소 취향을 안다면 선물을 선택할 때 어려움이 훨씬 줄어든다.문제는 취향을 전혀 모를 때다.이럴 경우 서 팀장은 "선물받는 사람의 직업에 맞춰 와인을 고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법조,금융,대학 교단에 종사하는 이들에겐 복잡 미묘한 풍미를 가진 와인보다는 아이스 와인처럼 긴장감을 완화시킬 수 있는 달콤한 와인을 권했다.논리적이고 꼼꼼하며,도덕 상식 원칙 등을 중시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마음을 편하게 하는 와인이 좋다는 것.

정치가나 기업가처럼 리더십과 성취욕이 강한 이들의 선물로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처럼 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와인을 추천했다.주목받기 좋아하고 대화를 자기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등 강한 성향을 꽃 향기가 부드럽게 완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부르고뉴 와인만의 희소성 또한 매력적이다.여성 CEO라면 '로슨즈 드라이힐 소비뇽 블랑'처럼 무게 있으면서도 상큼한 레몬향이 느껴지는 화이트 와인을 권할 만하다.

예술가 등 '기분파'라 할 만큼 낭만적인 성향이 강하고 성격이 예민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이국적이고 복합적인 향을 지닌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다.이탈리아 와인 중에서 '루피노 듀칼레 오로'가 산지오베제 품종 특유의 베리,말린 자두 등 농익은 과일향과 계피,향나무 등 이색적인 향이 복잡하게 어우러진 와인이다.마지막으로 항상 남을 배려하는 서비스 업종에 있는 이들에겐 튀는 것보다는 가장 보편적인 와인을 추천한다.품종으로 고르자면 카베르네 소비뇽이 무난하다.

◆창업연도,첫 딸 태어난 날…와인에 의미를 부여하라

취향과 관계없이 선물하려는 와인에 특별한 의미를 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예컨대 '싱글'이 최고 목표인 아마추어 골퍼에겐 '18홀에서 65타를 친다'는 한국식 해석으로 유명한 칠레산 '1865'를 주거나 올해 창업한 이들에겐 그리스 신화에서 새벽을 관장하는 여신의 이름을 사용한 미국 캘리포니아산 '이오스'를 선물하는 식이다.'정상을 향하여'라는 뜻을 갖고 있는 칠레 와인 '알칸스'도 좋다. 상대가 VIP이거나 선물을 많이 받는 편이라면 빈티지를 활용해 의미있는 와인을 고르는 게 인상에 남을 수 있다.사업을 시작한 해나 큰 도약을 이룬 해,결혼 기념연도나 자녀가 출생한 해 등에 맞춰 빈티지를 고르는 것.명품 와인과 고급 식자재를 함께 선물하는 것도 색다를 수 있다.세계 3대 진미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캐비아와 샴페인을 매칭하거나 푸아그라와 프랑스 최고급 디저트 와인으로 평가받는 '샤토 디켐'을 곁들이면 최고의 선물이 될 것이다.

◆선물할 때 피해야 할 것

이도저도 생각하기 귀찮다면 꼭 피해야 할 원칙만 지켜도 좋다.우선 상대방이 평소 당뇨를 걱정하고 있다면 아이스 와인이나 당도 높은 화이트 와인은 절대 금물이다.와인을 처음 접한 어르신에게 떫은 맛이 '일품'인 프랑스 특급 와인을 선물해선 돈을 들인만큼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차라리 연세가 많고 건강을 고려하는 분들에겐 유기농 와인을 선물하는 것도 '아이디어'다.독일의 '베른카스텔 닥터'도 괜찮고,투병 생활을 하다가 이제 심신을 회복 중인 분들에겐 '트라이튼하이머 아포테크'를 권한다. 상대방이 와인 애호가라면 두 병들이 세트보다는 그 돈으로 제대로 된 한 병을 선물하는 게 낫다.이제 갓 와인을 접한 이들에겐 이왕이면 와인에 대한 제품 설명서가 들어있는 것이 요긴하다.이경희 대유와인 대표는 "와인의 세계에 발을 디디는 사람들 대부분이 선물받은 와인이 도대체 얼마짜리일까 궁금해하며 자료를 이것저것 찾다가 입문하곤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분=안양베네스트 서홍진 식음팀장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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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선물할 때 주의 사항

1. 달콤한 와인을 선물할 땐 상대방이 당뇨를 앓지 않은가 확인해야

2. 와인 초보자라면 떪은 맛이 강한 프랑스 특급 와인은 부적절

3. 제품 설명서와 마셔야 할 시기 등 기초 정보를 곁들여 상대방을 배려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