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SG 최악의 금융사고 장본인 제롬 커비엘…"시장 이길 수 있다" 독단에 빠져
프랑스 소시에테 제네랄(SG)에서 유럽 주가지수 선물 거래를 담당하는 입사 7년차의 제롬 커비엘.

그는 지난해 초 주가지수가 오른다는 쪽에 베팅을 했다.전년 탁월한 실적을 내며 키운'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이 거침없는 베팅을 부추겼다.한동안 시장은 그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듯했다.수억원대의 보너스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세계 금융시장을 강타했다.지수는 힘없이 꼬꾸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손실을 일거에 만회하기 위해 시장에 맞섰다.계속 베팅액을 두세 배씩 늘려나갔지만 결국 '서브프라임 쓰나미'의 재물이 됐다.

세계 금융 역사상 최악의 사고를 낸 주역은 불과 31세의 주니어 뱅커였다.그는 내부 규정을 위반한 고위험 선물 투자로 SG에 무려 49억유로(72억달러ㆍ6조8000억원)의 손실을 입혔다.

1995년 외환 파생상품 거래에서 14억달러의 손실을 기록해 233년 역사의 영국 베어링 은행을 하루아침에 파산으로 몰고 간 '닉 리슨 사건'의 5배에 달하는 손실 규모다.이로 인해 프랑스 2대 은행인 SG는 145년 역사상 최대 위기에 몰렸다.

커비엘은 프랑스 리옹Ⅱ대학에서 경제학(금융시장)을 전공한 석사학위 소지자다.2000년에 SG에 입사했으며 1년에 14만8000달러 정도의 고액 연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그는 계약을 지원하고 점검하는 백오피스(지원부서)에서 일하다 2005년부터 거래창구(프런트오피스)로 자리를 옮겨 유럽 주가지수 선물 거래를 맡았다.

이번 사건은 커비엘 개인의 강한 에고(ego)와 투자은행의 실적 제일주의 문화,그리고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딜러들의 환상이 결합된 합작품이란 평가다.

커비엘은 독단성이 강한 천재로 알려졌다.SC 투자부문 사장인 장피에르 뮈스티에는 "그는 늘 혼자 행동했다"면서 "따라서 그가 누군가와 공모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독 범행임을 강조했다.

그의 천재성은 거래를 은폐하는 데 빛(?)을 발했다.커비엘은 회사 내에 비밀 사업체를 세운 뒤 회사의 조직과 정보를 이용했으며 이런 정보를 토대로 회사의 모든 통제 절차를 피해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커비엘이 SG의 리스크(위험) 관리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거래를 관리하는 백오피스에서 근무한 경력이 한몫했다.회사 시스템을 꿰뚫고 있던 그는 통제를 피해 한도를 넘어 투자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뮈스티에는 "그가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하지만 미국 금융 컨설팅 기업인 셀런트의 엑셀 피에른 분석가는 "실적에 따라 천문학적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IB(투자은행)의 보수 체계에선 딜러들이 위험을 무릅쓴 채 고수익을 올리려는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세계적인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갖춘 SG에서 발생,파생상품 투자의 위험성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베어링 은행을 파산시킨 장본인인 닉 리슨의 반응은 첨단 금융시장에 내재해 있는 위험성을 단적으로 대변한다.그는 SG 은행의 사기 사건을 접하자 "이런 일은 금융시장에서 언제든지 일어날 개연성이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다만 충격적인 것은 엄청난 손실 규모"라며 "은행들이 수익을 올리는 일에만 몰입해 위험 관리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영국 카스 비즈니스스쿨의 로저 스티어 교수는 "금융산업에 결핍된 윤리 문제가 곪아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생상품 딜러들은 '돈을 받고 고용된 총잡이'"라며 "총구는 언제든 회사를 겨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