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인 I♥KOREA] 경희대 중국 유학생들 ‥ "중국 소 보다 육질 뛰어난 한우,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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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눈이 내렸던 지난 22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의 경희대 캠퍼스.교내 한 강의동 지하 커피숍에서 만난 유학생들은 한국 대학생으로 착각할 정도였다.외모도 그렇지만 한국어 실력도 외국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유창했다.이들은 중국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러 경희대에 온 유학생 3인방.
"연구실 일정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꽉 짜여있어 정신이 없네요." 한국에 온 지 5년째인 신연남씨(27)는 분자세포생물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자신의 바쁜 생활을 전해줬다.오랜만에 보는 눈을 맞으러 나갈 틈도 없다고 했다.어디 출신인지 물었더니 옌볜이란다.조선족인 신씨는 옌볜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바이오 학문의 선진국인 한국을 유학지로 선택했다.
평소 소에 관심이 많았던 신씨가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 연구했던 것은 다름아닌 한우였다.농촌진흥청이 지원한 한우 육질개량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것. "한우의 육질이 중국 소보다 월등합니다"라는 신씨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연구한 한국 소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났다.지금은 암과 노화에 대해 연구 중이다.
한국은 신씨에게 사랑을 선사해준 곳이기도 하다.친구의 소개로 영남대에서 심리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같은 조선족 동갑내기 박란희씨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 것. 신씨는 "제가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사랑을 얻을 수도 없었겠죠"라며 옆에 앉은 아내를 바라보고 얼굴을 붉혔다.신씨는 박씨와 한국에서 사랑을 키우고 결혼에 골인해 지난해엔 둘을 꼭 닮은 아이도 낳았다.
가장 유창하게 한국말을 구사하는 최춘매씨(27)도 조선족이다.학부 때 옌볜대에서 임상의학을 전공했다는 최씨는 바로 의사가 되기보다 기초 과학을 더 닦기 위해 한국에서 유학을 한 외삼촌의 권유로 할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 신경생물학을 전공 중이다. 그 중에서도 "척추질환자에게 새 삶을 선사하고 싶다"는 최씨는 중추신경재생 분야를 연구해 올해 석사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중국 유학생 3인방의 막내인 장지씨(23)는 조선족인 다른 이들과 달리 칭다오 출신의 중국인이다.2004년 칭다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왔다.연세대 어학당에서 1년간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생물학과에 입학해 올해는 졸업을 앞 둔 4학년이 된다.
"영어권으로 유학가는 친구도 많았지만 전 이웃 나라인 한국어를 더 배우고 싶었어요."그녀의 바람대로 한국어 실력은 이미 수준급이 됐다. 장씨가 한국에 처음 와 누구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옆 방에 살던 한국 언니 덕분이란다.중국으로 출장을 자주 가던 그 언니는 출장갈 때마다 '문단속 잘하고 반찬은 냉장고에서 잘 꺼내먹어' 등 애정어린 쪽지를 잊지 않고 붙여줬다. "이런 것이 한국의 정이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언니처럼 다정한 언니 얘기를 꺼내던 장씨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고였다.
지금은 누구보다 잘 적응한 이들도 처음에는 언어 문제로 우여곡절이 많았다.중국에서는 대학에서도 중국어 교재로만 공부를 했던 터라 한국에서 영어 원서를 처음 접했을 때 용어가 너무 생소했다.전문용어인 생물학 용어를 영어와 한국어로 외워야 했으니 강의를 따라가기가 버거울 수밖에.그때마다 같은 실험실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신씨는 "실험실 동료들이 칠판에 생물학 영어 단어를 매일 10개씩 적어주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라고 회상했다.최씨도 "영어가 서툰 저를 위해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실험실 생활 중에 자기 일처럼 도와주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없을 것"이라며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적게는 3년부터 많게는 5년까지 한국에서 살아 입맛도 한국 사람처럼 바뀌었다. 순대국을 가장 좋아한다는 신씨는 "길을 걷다 구수한 순대국 냄새가 나면 안 먹고는 못배길 정도"라고 한국 음식 예찬론을 풀어놓는다.고향 칭다오가 바닷가라 해산물을 좋아한다는 장씨는 "중국인들은 날 것은 잘 안먹는데 전 산낙지의 담백한 맛과 게장의 진한 맛에 반해버렸어요"라고 한마디 더 거든다.
화제를 돌려 한ㆍ중관계에서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물었다.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중국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꽤 많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신씨는 "중국에서 빵을 먹어봤냐는 질문을 하는 등 아직도 중국을 후진국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문제"라고 안타까워하며 "이제는 한국과 중국이 경쟁자이자 동반자라는 인식을 할 때"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공부한 경험을 살려 한ㆍ중 교류 확대에 기여하고 싶다고 입을 모은다.신씨는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한국 축산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최씨는 의사가 돼 한국에 사는 조선족을 돕는 게 꿈이다.장씨는 한국 식품회사에서 중국 무역을 맡고 싶어한다.한국과 중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의 꿈과 희망이 이뤄지는 날,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질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