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1999년작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이라는 현실의 비애를 감히(?) 코미디로 다뤘다.

웃다 보면 슬픔이 차 오르는 감동의 수작이었다.

오는 31일 개봉되는 류승범 주연의 '라듸오 데이즈'는 일제시대 억압받는 조선 라디오 방송국을 소재로 웃음을 주려했다는 점에서 '인생은 아름다워'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대의 어두움을 어설프게 깔면서 웃음만 주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물론 코디미 영화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희화화되긴 했지만 일제의 억압과 항일운동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마음놓고 편히 웃을 수 없다.

항일 투쟁을 알리는 불꽃놀이가 시작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이제 배우들은 어떻게 되나'하는 걱정이 앞선다.

불꽃놀이는 '웰컴 투 동막골'의 팝콘 장면처럼 몽환적인 분위기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난장판 싸움으로 마무리된다.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불꽃'을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코믹 요소도 약하다.

자신의 역할이 극중 사랑다툼에 밀리자 '유학을 속성으로 마치고 돌아왔다'는 식의 돌발 애드리브로 존재를 과시하는 정도가 전부.

경쾌한 음악까지 줄곧 틀어주지만 많이 웃을 수 없는 코미디 영화가 돼버렸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는 일제시대 배경의 또다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처럼 그냥 시대상을 배제하고 코미디 본질에 충실했으면 더 괜찮을 것 같다.

국내 수위 영화제작사인 싸이더스FNH의 올해 첫 작품이자 설 연휴 기대작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12세 이상.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