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 김신일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막 박사학위를 받고 모 대학에서 처음으로 시간강사 자리를 잡았지만 학생들의 출석체크는 직접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교직원이 강의 시작 전 먼저 와 대신해 줬다. "교수님은 그저 강의와 연구에만 신경 쓰시고 출석체크 같은 귀찮은 일은 저희가 대신해 드리겠다"는 게 학교 측이 둘러댄 이유였다. 이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학생들의 시험 채점까지도 '성가신 일'이라며 강사에게 맡기지 않았다. 학교 측은 "정답지만 넘겨 주시면 저희들이 대신…"이라며 얼버무리곤 했다. 지난 연말 한 사석에서 김신일 교육부총리가 들려준 사회 초년병 시절 이야기다. 40여 년 전 시간강사였던 김 부총리는 학교 측의 행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선배 교수들도 다들 그렇게 하는 줄 알고 그대로 따랐다. 시간강사의 업무를 줄여주기 위한 학교 측의 배려가 아니라 학생 정원과 관련된 엄청난 내부비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당시 대입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대학별 단독시험제가 도입되면서 대학의 학생 정원 관리는 한마디로 제멋대로였다. 대학은 '학생이 곧 돈'이라며 청강생들까지 마구잡이로 끌어 모았다. 이러다보니 시간강사가 갖고 있는 명단의 학생보다 실제 강의를 듣는 학생이 언제나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비리사실이 학교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두려워한 학교 측이 시간강사 대신 학생들의 출석체크는 물론 시험채점까지 해줬던 것이다. 김 부총리는 교육부가 쓸데없이 규제를 만들어 대학을 옥죄고 교육을 망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확산되는 데 대해 "꼭 교육부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김 부총리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출범을 한 달가량 앞두고 '교육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각종 교육 개혁안들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이명박 대입개혁의 골자는 한마디로 대학자율이다. 그동안 교육부가 움켜쥐고 있던 학생 선발권 등 대입전형을 완전히 대학에 맡기는 이른바 '대입 3단계 자율화 방안'이 그것이다. 이 로드맵에 따르면 우선 1단계에서는 2009학년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보완하고 그 반영비율을 자율화한다. 2012학년도부터 수능 응시과목을 최대 5개 과목으로 축소하는 게 2단계다. 마지막 3단계는 여건이 성숙되는 시점에 대입전형을 완전히 대학에 넘긴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방향임에 틀림없다. 대학들도 그동안 그토록 원했던 일이 마침내 현실화돼 무척 반기는 눈치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자율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교육부의 대입정책을 이양받게 될 대학총장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이해가 다른 대학들의 목소리를 담아내 조화롭게 대입정책을 펼쳐나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크다. 벌써부터 서울ㆍ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간 수능등급제 등 일부 정책을 놓고 마찰음도 들려온다. 시간강사 김신일이 40여 년 전 겪었던 정부의 대학 규제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부디 대학이 과거처럼 자신들의 무덤을 스스로 파는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김수찬 사회부장 ksc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