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솔선수범해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적과 싸웠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00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였다고 설파했다.현대사회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부자의 나눔 정신'으로 바뀌어 활발한 기부 문화의 씨앗이 되고 있다.


기부 문화의 선진국은 미국이다.인디애나대학의 기부센터 조사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미국 국민들은 GDP(국내총생산)의 1.8%를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한 해 2610억달러(25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기부금으로 낸 셈이다.이 중 개인이 전체 기부금액의 83.6%를 차지하고 있다.이어 재단(11.6%)과 기업(4.8%)의 순이었다.국민소득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시민들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다.특히 자산 100만달러 이상을 가진 미국 부자들의 경우 98%가 기부나 모금 활동에 참여했다.일반 가정(5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미국 부자들은 대부분 기부에 의무적으로 참여한다는 얘기다.

미국 자선 전문 신문 '클로니클 오브 필랜드로피'가 최근 발표한 '2007년 미국 기부 순위 50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자선 기부금을 가장 많이 낸 사람은 할리우드 여배우 패리스 힐튼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배런 힐튼(72)이다.그는 "유산 상속은 (상속인에게서) 자기 재산을 형성하는 만족감을 빼앗는 일"이라며 호텔과 세계 최대 카지노인 하라스 엔터테인먼트를 매각한 대금 12억달러를 모두 자신의 아버지가 세운 콘라드 힐튼 재단에 기부했다.

2위는 화학회사 헌츠먼 케미컬 회장인 존 헌츠먼 부부로 지난해에만 7억5000만달러를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어 월가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와 금융업의 대부 데니 샌퍼드가 각각 4억7460만달러를 기부해 공동 3위에 올랐다.

미국 기부 문화의 또 하나의 축은 거부들이 설립한 자선재단들이다."부자로 죽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라는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철학이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현재 미국에는 6만여개의 재단이 설립돼 있다.자산 규모만 5000억달러(약 480조원)에 달한다.자산 규모 331억2000만달러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포드자동차 설립자인 헨리 포드의 아들 에드셀 포드가 설립한 '포드 재단'(122억5000만달러) 등이 대표적.

한국도 최근 기업의 사회책임경영(CSR)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회사 차원의 기부가 늘고 있는 추세다.전국경제인연합회의 '2006년 기업 및 기업재단 사회공헌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 202개사의 사회공헌 비용은 1조8048억원으로 집계됐다.2005년보다 28.7% 증가한 액수다.

국민들 사이에 자선은 아직 낯선 문화다.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2007년 개인 기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총 모금액 2673억원 중 개인의 기부 비중은 15.8%에 불과했다.기업(67.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나머지는 사회ㆍ종교단체(12.2%)와 공공기관(4.5%)이 차지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