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구직자 數 같은데 실업자는 왜 생길까



사람들의 경제활동 상태는 수시로 변한다.

샐러리맨이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 신세가 되는가 하면 집에서 빈둥거리던 '백수'가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직장인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통계청의 '2000~2006년 중 월평균 경제활동 인구 변화'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에선 매달 184만명가량이 이런 변화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매달 취업자(조사기간 중 월 평균 2223만명)의 1%가 실업자로 전락하고 2%는 구직활동을 포기하고 노동시장을 이탈(비경제활동 인구)한다.

실업자(86만명) 중에선 26%가 일자리를 구하고 11%는 비경제활동 인구가 된다.

또 비경제활동 인구(1432만명)의 5%는 일자리를 얻지만 1%는 구직활동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의 경제활동 상태를 바꾸는 힘은 뭘까.

가장 먼저 경기를 꼽을 수 있다.

경기가 나쁘면 기업들은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을 통해 인력을 줄이고 싶어하지만 경기가 좋아지면 직원수를 늘리는 경향이 있다.

경기 변동과 관계없이 기업이나 고용주들에게 발생하는 '고유한 충격(idiosyncratic shocks)'도 한 요인이다.

노사관계 악화나 생산성 저하 같은 '나쁜 충격'이 나타날 경우 기업들은 직원들을 해고할 수 있다.

반대로 신기술 개발 같은 '좋은 충격'은 기업들의 채용을 늘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경기나 고유한 충격 외에 사람들의 경제 활동 상태를 바꾸는 힘이 또 있다.

바로 사람들이 근로와 여가 중 무엇을 중시하느냐,즉 무엇에 비교우위를 두느냐 하는 점이다.

비교우위 이론은 원래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가 무역이 교역 당사국 모두에 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도입한 것.하지만 1950년대 초 프랑스 경제학자 로이와 이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제임스 헤크먼은 이 이론을 노동경제학에 적용했다.

로이의 이론에는 '어부와 사냥꾼'의 비유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어부가 되는 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어부를 직업으로 선택하지만 사냥꾼이 되는 게 돈을 버는 데 더 유리하다면 사냥꾼을 직업으로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를 '자기선택(self-selection)'이라고 한다.

'어부와 사냥꾼'의 비유를 '노동과 여가'로 바꿔 노동시장에 적용해보자.노동을 통해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노동을 선택할 것이다.

반대로 여가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여가를 선택할 것이다.

노동을 선택한 사람은 노동에 비교우위가,여가를 선택한 사람은 여가에 비교우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물론 사람들이 노동을 중시하느냐,여가를 중시하느냐는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한다.

직장 생활을 하던 여성이 아이를 낳으면 여가의 가치가 높아져 일을 그만둘 수 있다.

반대로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 구직자는 어느 누구보다 노동에 대한 욕구가 높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비교우위에 따라 노동과 여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실업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뉴 케인스언 학파' 경제학자들은 실질임금이 단기에 쉽게 변하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시장에 초과 공급이 발생하고 그 결과 실업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임금이 신축적으로 변하고 그 결과 노동시장의 총수요와 총공급이 일치하더라도 직업 탐색과 직업 교육 등의 '마찰적 요인'에 의해 실업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노동시장에 10명의 실업자와 1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있고 임금이 신축적이라고 가정해보자.총수요와 총공급이 일치하기 때문에 실업이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마다 원하는 일자리가 제각각이고 기업들도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직자와 기업의 요구가 맞아떨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동시장 참가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업이 나타나는 것이다.

노동부가 운영하는 '워크넷'(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월 평균 7만6000개의 일자리가 있었지만 이 중 4만개의 일자리만 채워졌다.

이는 노동시장에서 구직자와 일자리 사이의 '미스 매칭'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노동시장이 사람들의 비교우위와 자기선택에 의해서 움직인다면 정부의 고용정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의 고용정책이 노동시장 참가자들(기업과 구직자)의 선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정부가 신규 직원을 채용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준다면 기업은 인력 채용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또 정부가 직업 훈련비를 늘리는 등 취업을 장려한다면 구직활동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직업학교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다.

단 복잡한 경제 시스템에선 정부 정책이 반드시 당초 기대했던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경제의 구성원들이 정부 정책에 대해 제각각 다르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 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 정부는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다.

완벽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모든 정책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지,부작용은 없는지를 꾸준히 따져봐야 한다.

문외솔 <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