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식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38·사법연수원 33기)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서울대 공과대(금속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따고 삼성종합기술원과 하이닉스반도체 등에서 일했던 그는 상대방 변호사 역시 공대 출신이라고 해서 투지를 불태웠는데 결과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는 것.

그는 "제출한 서면을 읽어보니 기본적인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했다"며 "공대에 이름만 걸어놓고 고시준비만 하다보니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란 타이틀이 무색한 지경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무엇보다 다양한 학부 전공과 사회경험을 가진 법조인이 양산돼 변호사들의 전문성이 제고될 것이란 관측에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어느 대학,어느 학과 출신이라고 해서 전문성이 있을 것이라고 예단해선 안 된다"는 것이 선배 법조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민족일보 고 조용수 사장 대심 사건을 무죄로 이끌어낸 주역 중 한 명은 러시아 정치학박사 출신이다. 러시아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산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EMO) 등에서 일했던 지평의 류혜정 변호사(38·연수원 34기)가 그 주인공.

류 변호사는 "사회학 행정학 심리학 등과 연계된 전공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학문적 배경이 유능한 변호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에 진출하는 기업들을 자문하는 업무에는 컨설턴트 경험이나 유창한 러시아어가 더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학부전공에 대한 맹신은 금물이란 얘기다.

법무법인 세종의 이하나 변호사(31·연수원 33기) 역시 '전공불문'족에 속하는 케이스다. 이 변호사는 모 대학 한의학과를 3년간 다니다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법시험에 붙었다. 세종에서 유일한 '고졸' 변호사인 셈이다.

그러나 지식재산권과 방송통신, 제조물책임,영업비밀 등 분야에서는 떠오르는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변호사는 "변호사의 전문성은 오히려 함께 일하며 배우는 선배 법조인들, 자신이 맡는 소송 등으로부터 습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긴 가방끈'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의료, 보건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은 경험으로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경권 변호사(38·연수원 31기)는 지난 1월 의사자격증을 따냈다. 인턴과정을 2~3년 후로 미루고 일단은 서초동 법조타운에 복귀할 예정이다. 이제야 비로소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쑥쓰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과거 어떤 의료소송은 승소해 배상금도 많이 받아내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었다"며 "주섬주섬 임시방편으로 배워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체계적인 지식을 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우의 이경환 파트너 변호사(50·연수원 17기)는 1989년 라면회사의 우지파동을 지켜보면서 식품과 영양,보건학 등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이후 그는 연세대 보건학과에 진학해 8년간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쳤다.이 변호사는 "함께 공부한 동기들은 대부분 간호사와 의료인 등이었고 법조인은 없었기 때문에 다들 '왜 공부하느냐'고 물었다"며 "인적네트워크와 전문지식 면에서 당시의 선택은 옳았다"고 강조한다.

판사 출신의 황상현 화우 변호사(42·연수원 21기)는 "후배 법조인들이 로스쿨 입학 이후 과거 자신의 학부전공이나 사회경험을 바탕으로 관심가는 분야를 염두에 두고 관련 특별법 등을 꾸준히 공부해 놓으면 좋을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앞으로는 전문성이 없는 법조인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