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 위·변조 신고가 기업의 상장폐지나 부도를 막는 신종 기법으로 떠오르고 있다.자본잠식 등 한계 상황에 놓인 상장기업들을 인수,유상증자나 감자를 실시한 뒤 전 경영진 등이 발행한 어음에 대해 위·변조 신고를 하고 현금 지급을 거부해 정상화를 노리는 방식이다.

새로운 구조조정 기법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선량한 기업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ACTS 현금 지급 거부

28일 증권 및 제지업계에 따르면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홍원제지 등 제지업체들은 인쇄용지 판지 등을 공급하며 대금으로 받은 어음에 대해 ACTS(옛 협진양행)가 최근 변조된 것이라고 신고하자 자금 회수에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받은 어음에 대해 전 사주가 개인적으로 발행한 것이라는 등의 빌미로 발뺌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제지업계 전체의 ACTS에 대한 손실 규모가 1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ACTS의 강석기 대표는 "전 사주가 개인적으로 발행한 것이므로 지급 책임이 없다"고 반박했다.

ACTS는 지난해 12월20일부터 이달 22일까지 벌써 다섯 차례에 걸쳐 거래은행인 외환은행 구로점에 제출된 자사 어음에 대해 위·변조 처리됐다며 신고를 했다.지금까지 위·변조 신고 처리한 어음은 85억원에 달한다.

증권선물거래소는 ACTS의 작년 감사보고서가 '의견거절'임을 확인하고 상장폐지 절차를 추진할 것이라는 공시를 냈다.하지만 강 대표는 이에 대해 "전 사주가 발행한 11장의 어음을 회수해 신고하는 대로 적정의견을 받을 수 있다"며 조만간 상장폐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증권선물거래소 관계자도 "11장의 어음이 현금지급되는 걸 고려하면 상장폐지 사유인 완전자본잠식 가능성이 있지만 일단 이 부분에 대해 법적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진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에 따르면 완전자본잠식이거나 감사보고서 의견거절은 상장폐지 사유다.의견거절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ACTS의 자본잠식률은 88.6%다.결국 강 대표 주장대로 ACTS가 어음을 모두 회수하고 적정의견을 받아낸다면 상장폐지를 막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유행처럼 번지는 신종 기법


문제는 최근 이런 기법이 한계기업에 정형화된 공식처럼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ACTS는 현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 10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으며 감자(30주→1주)와 액면분할(1000원→500원) 등 구조조정과 사업매각 추진 무산,대표의 변경(박정구→강석기) 등 급격한 경영 환경 변화를 겪었다.

이는 지난해 SY(옛 CKF)가 그려온 행보와 유사하다.SY는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카오디오사업부문 양수를 추진하다 무산되는 과정에서 △유상증자·전환사채 발행 등 결의 △감자 △최대주주 변경 △다섯 차례 어음 위·변조 신고 등 다양한 경영권 행사를 했으며 반기보고서에서 '의견거절'을 받아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또 이 회사는 한때 부도설에 휘말렸으나 변조된 어음을 신고한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100% 자본잠식인 SY는 작년 7월 한때 주가가 2240원(액면가 500원)까지 치솟았으나 10월께 300원대로 급락한 뒤 지금은 90%가량 하락한 2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코스닥 상장기업인 엔토리노(옛 두일전자통신)와 삼협글로벌(옛 에프와이디)도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지급제시된 약속어음 25억원과 30억원어치에 대해 위·변조 신고 처리했다.엔토리노는 최근 삼협글로벌의 대주주로부터 지분(4.73%)을 인수키로 했다가 잔금에 대한 이견으로 취소한 바 있다.엔토리노는 완전자본잠식이며 삼협글로벌의 잠식률은 32.4%이다.

임상택 기자 lim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