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침체의 공포' 아시아로 급속 전염

미국 경기침체 조짐의 여파가 유럽과 일본은 물론 중국 등 이머징마켓으로 전염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가 현실화되고 있다.이로 인해 상하이 증시가 7% 하락하는 등 아시아 증시가 대폭락했다.

블룸버그통신은 28일 일본과 영국 등의 경기 둔화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중국을 포함한 이머징마켓도 미국 경기둔화로 수출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경제의 21%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소비 감소는 유럽과 일본뿐 아니라 신흥 시장의 수출 감소로 직결되고 있으며 미국 증시 급락은 세계 증시의 동조화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일본 경제는 이미 불황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골드만삭스의 야마가와 데쓰후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소비자신뢰도가 악화됐다"며 "2002년 초부터 70개월간 지속된 일본의 경제 성장이 종말을 고하고 침체기에 접어든 것 같다"고 평가했다.실제로 일본의 주택건설 수요는 4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얼어붙었다.

영국의 경기 둔화도 본격화되는 모습이다.지난달 소매판매는 1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집값 구매를 위한 금융권 대출도 2년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ING 파이낸셜 마켓의 제임스 나이틀리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소비 경기가 우울하다"며 "침체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성장모멘텀까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중국의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에 이르고 특히 대미 수출이 20% 정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3월 정부업무보고를 위해 가진 좌담회에서 "올해는 경제가 가장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한 것이다. 원 총리는 "국제적인 경제환경에 불안정 요인이 아주 많다"고 지적했다.

이미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 투자펀드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씨티그룹은 이날 뮤추얼펀드 동향 분석리포트를 통해 "지난주 아시아 펀드에서 47억달러가 빠진 가운데 중국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에서는 11억달러가 유출됐다"며 "중국은 대만과 한국을 제치고 투자자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줄인 시장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지고 있다는 정황들이 나타나는 가운데 유럽과 일본 그리고 이머징마켓의 경기까지 둔화되면서 지난해 4.7%를 기록한 세계 경제 성장률은 올해 3% 안팎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밴쿠버에서 한 연설에서 "일종의 세계 침체와 같은 현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의 짐 오닐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올 상반기 성장률은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및 9ㆍ11테러가 터졌던 2001년 이후 최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침체 우려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들의 통화 정책도 '완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미국의 지난해 신규 주택 판매가 전년보다 26% 줄어 사상최대의 감소폭을 기록, 30일(현지시간) 미국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0.5%포인트의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유럽 등 각국 중앙은행도 금리인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우선적인 책무"라며 매파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결국 지난주 전격적으로 금리 인하를 단행한 미 FRB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