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A계열사 B임원은 이달 초 해외 거래처 사장을 만나기 위해 출국하려다 그냥 되돌아와야 했다.

인천공항에서 출국심사를 받던 도중에 '출국금지'된 사실을 알게 된 것.B임원은 되돌아오는 차안에서 전화로 해외 거래처 사장에게 "정말 미안하게 됐다"고 거듭 사과했다.약속을 깬 이유를 묻는 거래처 사장의 질문에는 "개인 사정으로 못 가게 됐다"고만 말했다.출국금지 사실이 알려질 경우 추후 미팅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비자금 특검수사로 인해 삼성그룹의 해외 비즈니스 업무도 일대 혼선을 빚고 있다.B임원처럼 '출국금지'된 사실을 몰랐다가 뒤늦게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일이 속출하고 있는 것.현재 삼성그룹 임직원 중 출국금지된 이는 60∼7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계열사 CEO(최고경영자)를 비롯한 마케팅 담당임원 등 해외 업무가 잦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출국금지됐는지 여부는 본인이 미리 법원 또는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문의해야만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있다.미리 해외 주요 거래처 관계자들과 약속을 했다가 출금 조치 때문에 가지 못할 경우 개인의 신뢰도는 물론 회사의 신인도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출금 사실 자체가 해외 거래처들엔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힌다는 점도 삼성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앞으로 특검 수사가 진행되면 출국금지되는 임직원이 더 늘어날텐데 해외 비즈니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며 "모든 임직원들에게 자신의 출금 여부를 확인하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곤혹스러움을 토로했다.

삼성그룹은 이에 따라 이번 주 중 특검에 의해 출국금지된 임원 리스트를 자체적으로 파악한 뒤 해당 임원들에게 통보하기로 했다.출금 조치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해외 비즈니스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