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8일 특유의 소신으로 이명박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수용 불가(不可)' 입장을 밝혔다.임기를 불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이날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은 직접 작성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내용과 절차상의 하자를 조목조목 따져가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이로써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대통령직인수위 안에 맞춘 정부 조직의 출범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노 대통령,인수위 월권 받아들일 수 없다

노 대통령이 이날 밝힌 기자회견문의 요지는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정부 조직 개편법안에 대해 서명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떠나는 대통령이라 하여 소신과 양심에 반하는 법안에 서명을 요구하는 일이 당연하다 할 수 있느냐"면서 정보통신부와 여성가족부 통일부의 폐지,과학부와 교육부·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의 통합,대통령직인수위의 축소 등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노 대통령은 특히 인수위가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월권을 하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자신이 식물대통령이 돼 버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특히 국회의 조직 개편안 논의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면서 거부권 행사 가능성을 제기했다.

특히 대통합민주신당을 겨냥,"국회가 통일부와 여성부 존치를 주장하고 있을 뿐,다른 부분은 대체로 '부처 숫자를 줄여야 한다'는 인수위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부분적 기능 조정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은 청와대 참모들의 건의가 아닌 노 대통령 스스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대다수 장관들도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기자회견 방침을 전해듣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차질 불가피

노 대통령이 서명 거부를 넘어 법률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내비치면서 조각 등 이명박 정부의 출범도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단순한 서명 거부일 경우에는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법률안을 공포할 수 있지만 노 대통령이 이날 인수위의 정부 조직 개편안에 대해 워낙 완강하게 반대 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통합민주신당도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한 자체적인 대안을 설연휴 이후 제시한다는 입장이어서 국회 재논의를 위한 시간도 여의치 않게 됐다.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되면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된 후 15일 이내에 국회로 되돌려 보내져 재의가 요구된다.거부된 법안은 다시 국회에서 재의결에 부쳐져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법률로 확정되지만 이 경우에도 2월은 넘어가게 된다.

◆신당,"대통령이 나설 일 아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대통령이 나설 일이 아니다"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한나라당과의 대립각을 통해 이명박 견제 세력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신당으로서는 청와대의 예기치 못한 '끼어들기'에 당혹해하고 있는 것이다.

임시국회 첫날인 이날 신당과 한나라당은 정부 조직 개편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손학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오직 표를 의식해 억지로 협력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차관이나 국장을 데리고 일하겠다는 오만한 자세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10년 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당시 정부조직을 대폭 축소했는데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이 반대해 누더기 개편안이 됐고,김종필 총리 서리도 8개월 만에 총리가 되는 등 발목을 잡았다"면서 "신당은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새 정부의 원활한 출범을 위해 개정안이 최대한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신당에 촉구했다.강재섭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국회는 새 정부의 주춧돌을 놓는 국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정부조직법을 비롯한 국익과 민생 관련 법안들이 원만히 처리될 수 있도록 신당이 선배 여당 입장에서 화끈하게 협조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국회 농림해양수산위와 보건복지위 등 상임위에서도 정부 조직 개편안을 둘러싼 양당의 힘겨루기는 계속됐다.이처럼 신당과 한나라당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설연휴 전에 정부 조직 개편안이 처리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심기/김홍열/강동균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