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급진전되면서 노후 대비가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돈이 많은 부유층들은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덜 느끼겠지만 대다수 샐러리맨들은 '노후가 곧 위기'로 다가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봉급쟁이들의 가장 안정적인 노후 대비 수단으로 연금을 꼽는다.

연금은 은퇴 후 매달 일정액의 현금흐름을 보장함으로써 기본적인 생계,나아가 다양한 여가 및 취미활동까지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나라보다 먼저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유럽 지역에선 연금이 '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대학 졸업생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기업연금 시스템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느냐는 점이다.

우리나라도 2005년 말 퇴직연금(기업연금) 제도가 도입돼 선진국처럼 국민연금 개인연금 기업연금의 3층 사회보장 체계를 갖췄다.

지난해 11월 말 현재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은 2조864억원,계약 건수(기업 수)는 3만432건,가입자 수는 43만9948명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 전체로 보면 아직 퇴직연금 도입률은 약 5%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이 근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노후 대비 수단이지만 여전히 '남의 이야기'라는 것.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퇴직연금제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근로자는 전체의 2%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형승 ING생명 상무는 "기업 경영진이나 근로자들에 대한 교육 및 홍보 부족으로 퇴직연금이 아직까지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며 "범 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이나 교육 홍보가 강화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로자 2%만 퇴직연금 제대로 인식

한국경제신문이 인사이트리서치에 의뢰해 수도권 기업체(금융업 제외) 근로자 1000명,회사의 인사노무 담당자 100명,회사 노조집행부 상근자 100명 등 총 12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퇴직연금에 대한 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 72.5%,인사노무 담당자 76.6%,노조 상근자의 87.6%가 '퇴직연금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 등 퇴직연금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근로자 6.2%,담당 임직원 8.5%,노조 상근자 6.2%로 모두 10% 미만이었다.

특히 퇴직연금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대답한 근로자는 전체의 2%에 불과했다.

박수일 인사이트리서치 소장은 "퇴직연금에 대한 교육 및 홍보가 부족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퇴직연금제도에 관한 홍보.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근로자의 27.8%만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노조 상근자는 38.1%,담당 임직원은 44.7%라고 대답했다.

근로자들의 홍보 교육 횟수도 평균 1.76회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퇴직연금이 확정 지급되는 확정급여형을 선호한다고 대답한 근로자는 24.0%였으며 확정기여형을 선호하는 근로자는 11.5%로 나타났다.

퇴직연금 담당 임원과 노조 상근자에서도 비슷한 비율로 나타났다.

◆세제 혜택과 강제 도입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퇴직연금 도입이 저조한 것은 근로자 및 사용자들이 제도의 필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주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적극적인 홍보와 교육이 필요하다.

이형승 상무는 "기존 퇴직금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유인이 부족한 만큼 세제 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진국처럼 퇴직연금제도가 근로자 노후 대비 수단으로 충실히 활용되면 고령화에 따른 국가 부담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며 "현재 선택 사항인 퇴직연금제를 강제 의무 사항으로 바꾸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0년부터 24조원 규모의 퇴직보험에 대해 세제 혜택이 사라지면서 퇴직연금제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기업들이 퇴직연금제로 전환하지 않고 사내 유보하는 현행 퇴직금제도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