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주최 해킹대회에서 고교생으론 유일하게 본선에 오른 S고 3학년 A군(18)은 요즘 고민이 많다.

수준급 해킹 실력으로 남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진로가 막연하기 때문이다.

A군은 "해커 선배들이 정보보호 기업에서 박봉에 시달리며 휴일도 없이 야근하는 걸 보면 과연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나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국가정보원 국가사이버안전센터(NCSC) 관계자는 "고급 정보보호 인력을 배출하는 선순환 고리가 완전히 끊겼다"고 말했다.

'해커'는 엄연히 정보보호 전문 인력이지만 언제든지 '크래커(악의를 가진 해커)'가 될 수 있다는 뿌리 깊은 불신에다 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덕에 중.고등학교나 대학교 시절에는 해커들이 수준급 실력을 갖춰 주위를 놀라게 하곤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실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군복무나 취직,결혼 후 고급 기술인력이 허무하게 사장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NCSC 관계자는 "정권 차원에서 해커를 양성하는 북한의 경우 해킹 실력을 인정받으면 일류 대학에 들어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신분이 몇 단계 상승하기도 한다"며 "각국 해커의 공격을 막으려면 해커 등 정보보호 전문인력을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해커들은 자기네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며 일종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다.

2003년 말 국세청 등 90여곳을 해킹해 세상을 놀라게 했던 와우해커,널앤루트(null@root),시큐리티프루프,대학정보보호동아리연합 '파도콘' 등 알려진 해커 그룹도 꽤 된다.

하지만 키워주는 이가 없다.'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 때문에 항상 수사당국의 경계대상이 될 뿐이다.

군에서 30년 이상 정보화담당관으로 근무했던 대학교수 B씨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보안인력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글렀다"고 쓴소리를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전혀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것.또 승진을 못 하니 고위직에 올라갈 수 없고 보안에 밝은 정책을 입안하는 관계자가 전혀 없으니 악순환만 계속된다고 말했다.

인력 양성 시스템에도 문제가 많다.

대다수 기업은 보안인력을 체계적으로 키우려 하지 않고 경력자만 찾는다.

아직 정보보호 관련 학과가 태동 단계라 산학협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정보보호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고려대 순천향대 등 16개에 불과하다.

2006년 말 현재 학생은 1775명,전임교수는 79명으로 학생 1명당 교수 수가 0.04명에 불과하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경영공학전문대학원장은 "정보보호 인력은 앞으로 국가 보안을 책임질 군인과도 같다"며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