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아예 사양합니다.

연기는 극사실적이어야 한다는 게 제 소신이죠.그래서 또 악역이 걸렸나봐요."

2006년 영화 '타짜'에서 전문 도박사 아귀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윤석(40)이 이번에는 연쇄 살인범을 쫓는 출장안마소 사장으로 변신했다.

다음 달 14일 개봉되는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에서 땀과 담배 냄새가 뒤범벅된 엄중호역을 맡아 '살인의 추억'의 송강호에 버금가는 호연을 펼친 것.그는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평에 대해 웃으면서 비법(?)을 털어놨다.

시나리오를 받으면 사실적인 연기가 가능한지부터 꼭 살피는 습관 덕분이라는 것이다.

"'타짜' 이후에 시나리오가 20여개나 들어왔는데 모두 아귀와 비슷한 악역이었요.

아귀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도 많아 실망했죠.하지만 '추격자'는 캐릭터나 시나리오 모두가 너무나 리얼해서 곧바로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가장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고르다보니 또 악역을 맡게 됐다는 말이다.

사실 한국 영화에서 선한 캐릭터는 비현실적으로 그려지는 반면 악역은 사실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김윤석이 이처럼 사실성을 중시하는 배경은 또 있다.

지금은 영화배우로 더 유명하지만 그는 1988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데뷔한 연극인이다.

연극 무대에서는 주로 의사나 운동권,시인 등 지식인을 연기했다.

그러다 '타짜'의 최동훈 감독을 만나면서 악한 본성(?)을 드러냈다.

스크린 데뷔작도 2004년 최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추격자'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기존 영화와는 많이 다르다.

연쇄살인범 지영민(하정우)을 추격하는 엄중호 역시 선한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김윤석은 "납치된 출장안마사의 딸에게 '네 아빠 어딨냐'고 잔인하게 꼬치꼬치 묻는 장면에서 엄중호의 인물됨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말한다.

"비리 형사였던 엄중호는 매춘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결코 착해져서 살인범을 잡으려는 건 아니죠.엄중호가 보기에도 '뭐,이런 새끼가 다 있냐'고 말할 만큼 극한의 분노를 느꼈다고나 할까요."

유독 추격 장면이 많은 이 영화에서 50m의 달리는 장면을 찍기 위해 5㎞를 뛰었다는 그는 "관객들이 인생에서 갖가지 인물 유형을 만날 때 내 사실적인 연기를 떠올린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글=서욱진/사진=김영우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