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 인하대 교수·경제학 >

지난해 9월 제출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안이 국회 상임위인 통일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한·미 FTA를 비준한다는 입장이고,신당 지도부도 비준에는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통외통위 소속 신당 의원에는 한·미 FTA를 추진한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했던 전직 총리,재경부 장관,비서실장과 통상정책전문가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의 목소리보다 FTA 반대 의원들의 주장만이 들리는 것은 FTA 국회비준을 4월 총선 카드로 활용하는 정략적 계산 때문일 것이다.

28일 개회된 임시국회에서 통외통위가 한·미 FTA 비준안을 상정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4월2일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된 직후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협정 타결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제 야당의 처지가 된 신당은 여당 시절에 자신들이 타결한 협정을 거부하고 있고 일부에서는 4월 총선 이후 처리가 바람직하다는 의원들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먼저 협정이 타결된 이후 지난 9개월 동안 관련 상임위 의원들은 뭘 하고 있었는가를 묻고 싶다.

협상 과정에서 웬만한 내용은 이미 공개됐고,협정문과 부속서도 지난 협상 타결 2개월 후 공개됐다.

몇 가지 제기된 의문들에 대해 정부 협상기관 혹은 연구기관이 수긍할 만한 자료를 수차례 공개했다.

대표적으로 그동안 많이 거론됐던 한·미 FTA 경제효과에 대한 추정 작업 전(全)과정도 공개적으로 시연됐다.

당시 열린우리당도 한·미 FTA 평가보고서를 발표하지 않았던가?

둘째 4월 총선 이후에도 사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원론적인 수준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지적하면서 비준안 처리를 지연시킬 명분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협정에 대한 평가를 무시하고,다시 평가하자고 주장할 가능성도 높다.

보다 정밀한 방법으로 분석하는 것이 바람직한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사실상 현재 평가와 차이가 크게 나기는 어렵다.

셋째 미국의 비준일정으로 보면 4월 이후 비준 처리는 곤란하다.

힐러리 클린턴 미 대통령 후보 등 정치인들이 한·미 FTA를 선거 전략에 악용하는 측면도 있지만,협정 전체로 보면 미국보다는 우리나라가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4월 이후에는 미 대통령 선거가 열기를 더할 시기이며 한·미 FTA가 정치적인 쟁점으로 부각될 것이어서 재협상 요구가 더 강화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먼저 협정을 비준하게 되면 재협상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결과는 우리 국민들이 경제 살리기에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경제에 큰 이익이 되는 한·미 FTA 협정을 비준하면서,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국회가 할 일이다.

협정문을 찬찬히 검토해 보면 그렇게 우려할 사안은 많지 않고,이미 준비된 대책도 상당하다.

협정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철저한 대책 수립 미비'와 같은 원론적인 수준의 반대주장이 제기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협정 이행 중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FTA위원회에서 협의해서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도 있다.

한·미 FTA 비준 지연은 EU 등 다른 지역과의 협상 타결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미 FTA로 다급해져 우리나라와의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EU가 최근 느긋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국회는 한·미 FTA를 대승적 차원에서 비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