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글로벌 기업] 글로벌 기업은 경영DNA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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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마다 처한 현실이 다르고 이에 대처하는 전략과 전술도 모두 각양각색이지만 요즘 한국 기업들에는 뚜렷하게 읽히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글로벌화(globalization)다.
웬만한 규모의 기업 치고 '글로벌'을 외치지 않는 한국 기업은 거의 없을 정도다.
정체된 내수시장,가파르게 떨어진 원.달러 환율,풍부한 사내 유보금,성장을 향한 기업인들의 끝없는 욕구는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해외로 뻗어 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을 짓거나 외국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2003년 41억6000만달러에서 2006년 108억9000만달러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9월 말까지 투자금액(108억7000만달러)이 2006년 전체 투자액과 맞먹을 정도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한국 기업들이 GE나 IBM처럼 스스로를 다국적 기업,혹은 글로벌 기업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삼성전자 정도를 제외하고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기업은 별로 없다.
심지어 많은 경영 전문가들은 "삼성도 여전히 로컬 기업"이라고 말한다.
해외 사업의 크기는 커졌지만 이를 운영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는 여전히 '한국적 기업'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
당장 오랜 글로벌 경험을 갖춘 다국적 기업들의 한국 법인들을 살펴보자.GE코리아 황수 사장,한국IBM 이휘성 사장,소니코리아 윤여을 사장 등 이들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 사장은 대부분 한국인들이 맡고 있다.
반대로 한국 기업들이 설치한 해외 법인 중 현지에서 채용한 인재가 법인장을 맡고 있는 회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이 서울 본사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현지 우수 인재 확보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중국 대학생들이 입사하고 싶은 회사 톱5 안에 들었지만,대부분의 인재들은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구 회사로 자리를 옮긴다.
한국 회사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일정 직급 이상 승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현지의 우수 인재가 없다는 것은 기획,생산,마케팅 등 경영 활동을 현지 사정에 맞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오래 주재원 생활을 했다고 해도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그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행히 최근 들어 일부 기업들이 "해외에 공장만 짓는다고 글로벌 기업은 아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조직문화와 인사.교육 시스템 등 경영 자원을 글로벌 기업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
이런 측면에서 최근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회사는 LG전자다.
지난해 1월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남용 부회장은 글로벌 인사 시스템을 하나로 통일하고 앞으로 해외 법인장의 30%를 현지인으로 교체하겠다고 공언했다.
회사 내부의 모든 문서와 회의의 공용어를 영어로 통일했고,CMO(최고마케팅책임자) CPO(최고구매책임자) 등 C-레벨 경영진에 외국인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 톱10'으로 만들겠다는 게 남 부회장의 목표다.
LG전자뿐만이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02년 데이빗 스틸 상무를 시작으로 매년 외국인 인재를 중용,현재 외국인 임원의 숫자가 13명에 달한다.
현대.기아차는 미국,유럽의 유명 대학들을 돌아 다니며 매년 100여명의 해외 인재를 유치하고 있다.
SK도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 풀(pool)'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반대로 국내 인력들이 영어 등 외국어 능력을 쌓고 글로벌 마인드를 갖추도록 교육하는 데에도 많은 기업들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STX그룹은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크루즈선을 타고 10박11일 일정으로 베이징,칭다오,상하이 등 중국 주요 도시에 자리잡은 다국적 기업 사무실을 돌며 글로벌 감각을 키우는 것에서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글로벌화는 현지화에서 시작한다'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을 실천하는 회사가 많아졌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지난해 미국 중장비 회사인 밥캣 인수 등 굵직한 글로벌 M&A를 잇따라 성사시킨 두산그룹은 해외 인수 기업의 기존 경영진을 대부분 유임시키고,본사 파견 인력을 최소화해 M&A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지금까지는 우리 기업들이 해외로 경영활동의 외연을 넓힌 '글로벌 경영 1기'였다면 이제부터는 다국적 기업으로서의 DNA를 갖춰 나가는 2기라고 할 수 있다"며 "이런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화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