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처투자' 다시 떠오른다
워런 버핏,윌버 로스 등 '투자 귀재'들이 신용경색으로 타격을 입은 미국 기업 사냥에 나섰다.

위기에 몰린 회사를 싼 값에 사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이들의 투자 계획을 전하면서 죽은 짐승을 먹고 사는 독수리(vulture)처럼 부실 기업을 사들여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인 후 되파는 '벌처 투자'의 시대가 왔다고 보도했다.

현금이 풍부한 억만장자 투자자에게 신용경색은 더없는 투자 기회다.

이들은 지난 몇 년간 주식가치가 너무 비싸진 데다 사모펀드들이 워낙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바람에 관망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최근 금융위기를 신호탄으로 다시 왕성한 투자활동에 나서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최근 증권사부터 은행,미디어 회사는 물론 일반 소비재회사에 이르기까지 부실화되는 곳이 늘면서 "독수리(벌처 투자자)들이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기업 사냥꾼으로 유명한 월가의 투자자 윌버 로스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달 25일 채권보증 업체를 인수하거나 아예 새로 설립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채권보증업은 채권 발행자가 부도날 경우 원금과 이자를 내주는 사업.신용등급 하향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암박 파이낸셜이 대표적인 인수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다.

윌버 로스는 과거 광산과 자동차부품 업체 등 부실 기업을 헐값에 사들인 후 비싼 값에 팔아 큰 시세차익을 남겼다.

지난해 8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위기가 본격화했을 때도 모기지대출 업체인 아메리칸홈모기지에 5000만달러를 대출하며 관련 투자에 의욕을 보였다.

이외에도 로스는 자금난에 처한 기업에 대한 투자와 구조조정을 위해 4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기로 했다고 FT는 전했다.

로스는 "(경제에) 혼란이 깊어질수록 투자 기회를 짚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보험,모기지와 자동차부품 업체를 다음 투자 목표로 꼽았다.

'가치 투자자'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로스보다 한발 더 앞섰다.

지난 몇 년간 적절한 기업 인수 기회가 없어 아쉬웠다는 그는 최근 몇 달간 총 60억달러를 투입해 인수·합병(M&A)을 성사시키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정도는 시작일 뿐이다.자신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가 쌓아둔 현금만 해도 400억달러.이 돈을 투입할 먹잇감을 찾고 있다.대형 금융회사나 제조업체를 노리고 있다고 FT는 전했다.이미 지난달 벅셔해서웨이의 자회사 벅셔해서웨이 인슈어런스를 차리고 지방자치단체들이 발행한 채권을 보증하는 사업도 시작했다.

모니시 파브라이 자산매니저는 "지금이 바로 벅셔해서웨이를 위한 시장"이라며 "주식시장에서 요즘 같은 매도세가 이어지고 벅셔해서웨이의 자금이 충분한 만큼 앞으로 뭔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화장품회사 레브론부터 증권회사 얼라이드바튼까지 다양한 회사를 보유한 재벌 론 페렐먼도 기업 인수 기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는 최근 FT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상황이야말로 매입 호기"라며 "다음 여섯 달간 매우 특별한 기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