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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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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 소년이 실려온다.

    교통사고 환자인데 출혈이 심하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루프스 아니면 E형 간염으로 짚었으나 둘 다 아니다.

    그 사이 환자의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간 이식이 시급한 지경까지 이른 가운데 닥터 하우스는 환자가 기르던 고양이 사체를 해부,원인을 밝혀낸다.

    하우스는 막 시작하려던 간 이식 수술을 중단시키곤 닭죽이나 실컷 먹이라고 말한다.

    흰개미로 인한 나프탈린 중독인데 병원에 들어온 뒤 제대로 먹지 못해 나타난 증세니 영양 보충만 잘해주면 된다는 것이다.

    멀쩡한 간을 떼낸 뒤 평생 후유증에 시달릴 뻔했던 환자는 건강하게 퇴원한다.

    국내에서도 인기 높은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내용('금단증상') 중 하나다.

    주인공 하우스는 진단 전문 의사다.

    다리 통증을 잊으려 진통제를 사탕 먹듯 먹고 후배의사와 주변 사람들에게 막말을 일삼는 문제투성이 인간이다.

    그러나 그는 치료에 필요한 확실한 진단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작은 가능성 하나도 놓치지 않고 매달린다.

    가족력은 물론 환자의 숨겨진 과거까지 들춰내고 생활환경을 알기 위해 가택 침입도 불사한다.

    이런 그도 모든 병의 원인을 쉽게 파악하지는 못한다.

    감기 걸린 청소부가 만진 인형에서 비롯된 신생아 감염의 원인을 모르자 두 아기에게 다른 약을 처방,한 아기를 잃고서야 치료제를 찾기도 한다.

    드라마 속 천재의사가 이러니 현실 속 의사는 오죽 힘들고 어려우랴.그렇지만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암 진료 관련 소비자 피해의 80% 이상이 검사 소홀 등 의료진의 오진 때문이라는 건 기막히다.

    실제 몇 달 전 검사에서 이상 없다는 판정을 받은 이가 갑작스런 암 발병으로 세상을 뜨기도 한다.

    오진의 배상이 대부분 1000만원 미만이라는 데는 더더욱 할 말이 없다.

    암 뿐이랴.무좀약의 부작용을 암이라고 진단하거나 다이어트용 설사약 복용에 따른 증세를 간질로 판정한 의사도 있다는 마당이다.

    의사도 실수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성에 환자에 대한 애정을 더한다면 분명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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