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객들이 극장에서 보는 외화는 주로 할리우드나 홍콩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다른 지역의 영화들 앞에는 대개 '인디 영화'나 '예술 영화'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막상 편견없이 유럽 영화를 보면 잘 만들어진 데다 재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폐인 영화 '오퍼나지-비밀의 계단'(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은 '식스 센스'에 못지않게 잘 만들어진 판타지 스릴러다.

'판의 미로'로 알려진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제작했다.

주인공 로라(벨렌 루에다)는 에이즈에 걸린 입양아 아들 시몬을 치료하기 위해 자신이 이전에 살았던 고아원 오퍼나지로 돌아온다.

시몬은 이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면서 곧 실종된다.

시몬을 찾기 위해 경찰은 물론 심령술사까지 동원한 로라는 오퍼나지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국미가 물씬 풍기는 스페인의 대저택과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변을 배경으로 치밀한 구성과 균형잡힌 연출이 빛을 발한다.

아이가 천으로 얼굴을 가리는 것이 영화가 조성한 공포 분위기의 전부.

그 흔한 특수효과 한 번 사용되지 않았지만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심령술사가 오퍼나지의 과거를 여행하는 장면은 공포영화의 고전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킬 정도다.

여기에 간절한 모성애와 비극적으로 죽은 영혼에 대한 슬픔이 겹쳐 가슴이 뭉클해진다.

시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는 마지막 반전은 '식스 센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사후 세계와 영혼의 한(恨) 등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영화가 어떻게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는지 놀라게 된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