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한두 번씩은 나도 연어가 된다.모천의 수초 냄새를 잊지 못하고 태평양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온몸에 비늘이 돋는다.은빛으로 반짝이는 연어의 비늘을 나는 그리움이라 부른다.

지금쯤 고향 마을엔 먼저 도착한 또래 친구들이 모여 고샅을 쓸고 있겠다.어린 시절 엎혀지낸 할머니의 등이라도 긁듯 고샅 구석구석을 개운하게 쓸어주고 있겠다.싸리비가 모처럼 만에 착한 효자손이 되어 지나간 그 길이 동구 밖까지 이어지면,그간의 안부를 묻는 정담이 마을회관 앞 정자나무 둘레를 도란도란 물들여주겠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정자나무에게도 설날 아침이면 차례상에 올린 음식을 바친다.그 옛날처럼 이제 동제는 지내지 않지만,한낱 나무에게까지 정갈한 음식을 바치는 것은 풀 한 포기도 귀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고스란히 지켜가기 위함이다.나무와 내가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정자나무는 인심이 후한 편이라서 자신 앞에 놓인 상을 혼자 독식하는 법이 없다.고소한 소문을 퍼뜨려 새들도 불러모으고,겨울날 주린 배를 품고 들녘을 떠돌아다니고 있을 고양이들까지 불러와서 성찬을 나눠먹을 줄 안다.설날은 나도 한 그루 정자나무가 되어 보는 날이다.

촌놈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더러는 부정도 하고 애써 외면하기도 하였지만,기실 나는 고향 마을의 이 아름드리 정자나무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고 자란 쌀로 양식을 삼으며 팍팍한 대처살이를 견뎌왔다.어느 해 한 가마의 쌀과 함께 할머니가 보내온 편지 봉투에 붙어있던 밥풀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가,굶지 말고 다니거라.서울 살면서 아무리 바빠도 삼시 세 때 밥은 꼭꼭 챙겨먹고 다녀야 하느니라.'

누군가 대필해준 게 분명한 그 편지봉투에 붙어있던 밥풀은 으깨어져 있었다.성하지도 않은 몸으로 농사를 짓는 할머니처럼 온몸이 으깨진 채 쌀 한 가마를 품고 온 밥풀.설날은 그 밥풀 하나의 사랑을 믿는 날이다.으깨지고 뭉개진 채 천리를 넘어온 밥풀 하나의 끈끈한 힘을 믿는 날이다.

설날 아침 나는 그 쌀로 지은 떡국을 한 그릇 뚝딱 비울 것이다.어서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싶었던 내 어린 날을 생각하며 몇 그릇 씩 욕심을 내는 조카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볼 것이다.그리고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며 나를 낳아준 대지에 절을 올릴 것이다.조상과 대지를 향해 온몸을 숙일 줄 아는 마음으로 겸허히, 알곡처럼 뿌려지는 새해 첫날의 햇살을 가슴에 품어볼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돌아간다.탯줄처럼 이어진 고샅길로,떠나오던 날 동구 밖에서 손을 흔들어주던 정자나무에게로,내 주린 영혼을 달래주던 쌀과 대지 속으로.그리하여 나는 다시 돌아간다.'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한 두릅의 굴비와 한 광주리의 사과를/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침묵해야 한다는 것을'(곽재구,'沙平驛(사평역)에서' 중)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리 길이 막히고 고단해도 모천을 향해 돌아간다는 것,그것은 연어에겐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와 다른 것이 아니니까.

< 손택수(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