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건호 < 한국증권업협회장 >

지난해 시작된 서브프라임 사태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억누르고 있다.최근 우리시장에서 직접적으로 수급 불균형을 초래한 것은 외국인이다.이들이 유독 한국주식을 많이 팔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여느 이머징 마켓보다 유동성이 풍부하고 그동안 높은 수익을 누려 이익실현이 용이하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우리시장이 정작 당사자인 미국시장보다 2~3배나 빠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주가는 결국은 펀더멘털이 좌우한다.30여년간의 증권업계 경험을 통해 이 단순한 시장원리가 지배한다는 것을 굳게 믿게 됐다.최근의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지금 우리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까지 낮아져 2~3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시장이 낙후된 시절의 디스카운트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그러나 지난 수년간 선순환을 통한 시장의 질적 성장을 고려할 때,최근의 사태가 진정될 경우 한국이 다시 투자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처로 재부상할 것임을 강하게 시사한다.장기적 안목의 더욱 냉정한 투자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최근 위기를 맞은 선진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자금난이 때마침 외환보유액을 무기로 금융의 전략산업화에 나서고 있는 후발국가들의 이해와 맞아 떨어지고 있다.중동국가들과 중국,러시아,싱가포르,그리고 최근 한국도 이 대열에 동참했다.우리가 이제 금융에서도 국제무대를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우리 경제가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더 이상 전통적 제조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그 자체로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효율적 자금순환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강하게 만드는 금융서비스산업 발전이 필수적이다.이런 의미에서 금융서비스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수출산업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금융의 세계화 추세는 이제 주어진 것으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 금융산업이 처한 환경은 과거 제조업의 성장기 때보다 훨씬 유리해 보인다.자본시장통합법 및 금융허브 추진과 신정부의 금융서비스산업 육성 의지 등 여건이 성숙되고 있다.여기에 우리는 과거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경험도 있다.우리가 제조업과 IT산업에서 단기에 큰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보다 한발 앞선 타이밍이었음을 기억하자.이번 위기를 상대적으로 낙후된 우리 금융서비스산업의 발전 기회로 승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자.바로 방만했던 미국의 통화신용정책에 따른 과잉유동성과 이로 인한 자산버블,그리고 물론 여기에 금융회사들의 탐욕적인 경쟁심도 일조(一助)했다.때문에 일각에서 일고 있는 파생상품 자체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자칫 본질을 벗어나 금융시장의 발전만 저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이런 시기에 자본시장통합법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입각한 일련의 과감한 금융규제 완화 조치가 우리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크게 앞당길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국제금융 질서가 요구되는 지금은 우리 금융서비스산업에 큰 위기이자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고 본다.탁월한 거시적 시각과 정교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선진국 실패를 타산지석 삼아 우리나라 금융수요자와 금융서비스산업이 더 크게 발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위기를 기회로 인식하는 긍정적 사고와 신속한 실천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