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통상 의사라고 하면 '핀셋'이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그간의 병원 치료 경험을 활용해 연세대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추진력이 탁월한 최고경영자(CEO) 스타일이다.대학 다닐 때부터 의과대학 학생회장을 지냈고,학교 당국에 교육개혁을 요구할 정도로 남다른 리더십을 발휘했다.
그 뒤에도 보건대학원장,사회교육원장,행정대외부총장 등 학내 보직을 두루 거치며 행정력을 인정받았다.
1994년부터 3년간 농구부장을 맡아 이상민,서장훈 등 '스타 선수'들을 거느리고 연세대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끌기도 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연세대 농구부가 인기 절정이던 그 시절 기분이 최고였다"며 "당시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은 연세대였다"고 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사회교육원장직을 맡아 실직자들을 대상으로 취업 재교육 사업을 실시했다.시작 당시 200~300명에 불과 했던 수강생이 850명까지 늘었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연세대가 나라를 위해서 봉사한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의 화법은 직설적이다.군더더기 없이 짧고 명료한 대화를 즐긴다.일하는 스타일 또한 에둘러 가기보단 문제를 정면돌파하는 정공법을 즐긴다.한번 옳다고 판단하면 쉽게 번복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는 목적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이번 총장 선거 때는 교직원 개혁을 공략으로 내걸면 교직원 표를 잃을 것을 알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김 신임 총장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부친이 서울의 개척교회 목사였고,기독교 계열인 서울 대광중ㆍ고교를 나왔다.현재 마포구 북아현동에 있는 아현중앙감리교회 장로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 한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제네바 총회에 참석해 고(故) 이종욱 박사를 WHO 사무총장에 당선시킨 것도 김 총장이 큰 보람으로 삼는 기억이다.
좌우명은 김구 선생이 애송했던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말지어다.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서산대사의 한시 구절이다.
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
주요 약력
△1948년 서울 출생 △1967년 서울 대광고 졸업 △1974년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1984년 서울대 보건학 박사 △1982년 연세대 의대 교수 △1997∼2002년 연세대 사회교육원장 보건대학원장 △2000∼2002년 보건행정학회 회장 △2004∼2006년 연세대 행정대외부총장 △2006년∼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