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밤 민주노동당 당 대회. 표결 신호가 떨어지자 자주파가 중심이 된 대의원들은 일제히 노란 명패를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당직자의 신상정보 등 기밀 사항을 북한 당국에 넘긴 소위 '일심회' 관련자에 대한 제명안을 백지화하는데 찬성한 것이다. 제명안을 포함한 당 혁신안을 내놨던 심상정 의원 이하 비상대책위원들은 소리 없이 일어나 대회장을 빠져나갔다. 대선 패배 이후 20일간 당을 이끌어온 비대위의 노력을 조소하기라도 하듯이 심 의원의 굳은 표정 뒤로 자주파 대의원들의 웃음 소리가 이어졌다. 2000년 민노당 창당 이후 8년간 불안한 동거를 해온 평등파와 자주파가 갈라서는 순간이었다.

자주파 대의원들은 "국가보안법으로 수감돼 있는 동지들의 등에 칼을 꽂는 행위"라며 제명안에 반대했다. 비대위가 제명 근거로 제출한 법원판결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운동하는 사람들이 부르주아 법원의 판결문에 휘둘렸냐"는 격한 반응까지 쏟아냈다. 대한민국 원내 제3당의 전당대회에서 나온 얘기가 맞는지 귀를 의심케 했다.

당 기밀을 외부에 넘긴 당직자를 제명하는 일은 상식있는 공당이라면 당연한 조치다. 하물며 기밀을 넘겨준 대상이 북한 공작원이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대상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제명안이 당 대회를 통과하지 못한 현실은 민노당이 북한의 조선로동당 2중대임을 자임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자주파는 당 대회에서 비대위를 비롯한 평등파에 '동지적 신의'를 요구했다. 당원들의 정보를 북한에 빼돌리며 이미 신의를 배반한 자들에 대해 동지적 신의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북한 핵실험을 '자위권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두둔하고,식량난에 대해 '미제의 음해'라는 자주파의 '종북(從北) 역발상'의 연장선상이다.

자주파는 민노당을 나와 새로운 정당을 준비하고 있는 평등파 일각을 향해 '분열주의자'라고 비판하지만 정작 분열의 책임은 과거 이념의 울타리에 갇혀 대한민국의 어떤 세력과도 소통하지 못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친북세력에 있다.

노경목 정치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