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마당쓸이'가 그립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 허구생 서강대 국제문화교육원장·역사학 >
설 연휴가 시작됐다.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귀성을 해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차례음식도 만들고 쌓였던 이야기도 나누지만 설맞이가 옛날 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아닌 게 아니라 윷놀이,널뛰기,팽이치기 같은 놀이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벌였던 지신밟기,석전(石戰),차전놀이 등의 집단놀이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사실 이 같은 세시풍속들은 대부분 농경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던 것들이다.그러니 산업화가 진행될 만큼 진행된 요즈음의 우리 시속(時俗)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그리 생각하면 그다지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에는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예를 들면 우리 전통사회에는 '마당쓸이'라는 것이 있었다.이웃의 누군가가 자기 집 마당을 쓸어주면 그 이웃집에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는 걸 알아채고 식량을 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또한 춘궁기에 가난한 아낙들이 산에서 나물을 캐어 부잣집에 가져다주면 아무 말 없이 쌀을 내주는 전통도 있었다.
서양의 전통사회에서도 공동체적 유대에 바탕을 둔 끈끈한 인간관계가 있었다.어떤 사람이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해 노동력을 잃게 되면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지원에 나섰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공동체 전체가 나섰다.또한 이웃의 경제적 곤란을 돕더라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받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예컨대 '비밀빈민'이란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며 남에게 드러내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들에게는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경제적 도움이 이뤄졌다.
이러한 아름다운 관행들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산업화가 가져온 새로운 현상인 익명성 때문이다.우리는 이제 바로 옆집 사람이 누군지,무얼 하는 사람인지,자녀가 몇인지도 잘 모르는 세상이 됐다.익명의 사회가 가지는 특성 중의 하나는 의심이다.상대방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19세기 영국의 시인 키플링은 "내 문 안에 들어온 낯선 이는 진실하거나 친절할지 모르나 내가 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없어라"라고 노래했다.그의 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낯선 사람을 의심하게 마련이다.문제는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주위 사람들 거의 모두가 낯선 사람으로 채워지게 됐다는 것이다.소위 '이웃사촌'이라 부르는 바로 옆집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을 줄 수 없는 마당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음속 깊은 정을 베푼다는 것은 어렵게 됐다.
시장에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맡겨두면 필요한 만큼의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재화를 공공재(公共財)라고 한다.등대,맑은 공기 등이 대표적인데 상품화하기도 어렵고,하더라도 무임승차를 배제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자선도 공공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 마음도 괴롭고 그들이 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그러나 자기 힘만으로는 어림없을 것 같고 또한 자기가 아니더라도 남들이 해주겠지 하는 생각들을 하니까 충분한 자선이 이뤄지지 않는다.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강제적인 세금을 바탕으로 운용하는 자선이 오늘날의 사회복지제도다.그러나 국가의 활동만으로는 우리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모두 구제하기는 어렵다.설날을 맞아 주변 사람들을 공동 운명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서로 따뜻한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가 되길 기원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설 연휴가 시작됐다.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귀성을 해서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들과 차례음식도 만들고 쌓였던 이야기도 나누지만 설맞이가 옛날 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아닌 게 아니라 윷놀이,널뛰기,팽이치기 같은 놀이도 찾아보기 어렵게 됐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벌였던 지신밟기,석전(石戰),차전놀이 등의 집단놀이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사실 이 같은 세시풍속들은 대부분 농경사회와 깊은 관련이 있던 것들이다.그러니 산업화가 진행될 만큼 진행된 요즈음의 우리 시속(時俗)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그리 생각하면 그다지 아쉬워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에는 산업화와 더불어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예를 들면 우리 전통사회에는 '마당쓸이'라는 것이 있었다.이웃의 누군가가 자기 집 마당을 쓸어주면 그 이웃집에 먹을 양식이 떨어졌다는 걸 알아채고 식량을 보내는 것이 관행이었다.또한 춘궁기에 가난한 아낙들이 산에서 나물을 캐어 부잣집에 가져다주면 아무 말 없이 쌀을 내주는 전통도 있었다.
서양의 전통사회에서도 공동체적 유대에 바탕을 둔 끈끈한 인간관계가 있었다.어떤 사람이 병이 나거나 사고를 당해 노동력을 잃게 되면 가까운 친척이나 이웃이 지원에 나섰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공동체 전체가 나섰다.또한 이웃의 경제적 곤란을 돕더라도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받는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예컨대 '비밀빈민'이란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며 남에게 드러내기를 망설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이들에게는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경제적 도움이 이뤄졌다.
이러한 아름다운 관행들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거의 다 사라져버렸다.산업화가 가져온 새로운 현상인 익명성 때문이다.우리는 이제 바로 옆집 사람이 누군지,무얼 하는 사람인지,자녀가 몇인지도 잘 모르는 세상이 됐다.익명의 사회가 가지는 특성 중의 하나는 의심이다.상대방을 의심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19세기 영국의 시인 키플링은 "내 문 안에 들어온 낯선 이는 진실하거나 친절할지 모르나 내가 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없어라"라고 노래했다.그의 시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낯선 사람을 의심하게 마련이다.문제는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주위 사람들 거의 모두가 낯선 사람으로 채워지게 됐다는 것이다.소위 '이웃사촌'이라 부르는 바로 옆집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을 줄 수 없는 마당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마음속 깊은 정을 베푼다는 것은 어렵게 됐다.
시장에 수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맡겨두면 필요한 만큼의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 재화를 공공재(公共財)라고 한다.등대,맑은 공기 등이 대표적인데 상품화하기도 어렵고,하더라도 무임승차를 배제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자선도 공공재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주변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내 마음도 괴롭고 그들이 어서 고통에서 벗어나길 원한다.그러나 자기 힘만으로는 어림없을 것 같고 또한 자기가 아니더라도 남들이 해주겠지 하는 생각들을 하니까 충분한 자선이 이뤄지지 않는다.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강제적인 세금을 바탕으로 운용하는 자선이 오늘날의 사회복지제도다.그러나 국가의 활동만으로는 우리 주변의 힘든 사람들을 모두 구제하기는 어렵다.설날을 맞아 주변 사람들을 공동 운명을 가진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서로 따뜻한 도움을 주고받는 사회가 되길 기원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