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양 추위 속에 해는 가고 또 오는 거지만 새해는 그런대로 따스하게 맞을 일이다.얼음장 밑에서도 고기가 숨쉬고 파릇한 미나리싹이 봄날을 꿈꾸듯 새해는 참고 꿈도 좀 가지고 맞을 일이다.오늘 아침 따뜻한 한잔 술과 한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언제 읽어도 푸근한 김종삼 시인의 '설날 아침에' 전반부다.오늘은 '까치 설',내일은 '우리 설'이다.설날을 맞는 입장과 처지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그래도 한 가지,양력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이나 지났는데도 미처 실천에 옮기지 못한 각오를 새삼 되새겨보는 점은 비슷할 게 틀림없다.

세월은 빠르고 작정대로 실행하는 건 어렵다.도처에 걸림돌 투성이고 핑계 또한 많다.'올해엔 꼭' 결심했으나 어물거리다 닥친 연말에 회한만 가득했던 게 어디 한두 해던가.'딱 하나,이것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을 텐데' 싶어 정신없이 내달렸건만 막상 얻고 보니 아무 것도 아닌 듯해 허탈하고 실망한 적은 또 얼마였던가.

그러니 이번 설엔 '무엇이 되겠다'보다 '어떻게 살겠다'에 초점을 맞춰보면 어떨는지.'일찍 일어난다''내 방 청소는 내가''수입을 계산해 지출한다'부터 '따로 사는 부모님께 전화라도 자주 드린다''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보탠다''누구든 판단하지 않고 이해하려 애써본다'까지.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살다 보면 소유가 행복을 보장하진 않고 밑졌다 여겼던 일이 커다란 보람을 안기는 수도 흔하다.설을 앞두고 미국 작가 척 로퍼의 '자연이 들려주는 말(원제 I Listen)'은 김종삼씨의 시와 더불어 조용히 그러나 큰 울림으로 다가선다.

'나무가 말했습니다.우뚝 서서 세상에 몸을 내맡겨라.너그럽고 굽힐 줄 알아라.… 태양이 말했습니다.네 따뜻함을 다른 사람이 느끼도록 하라.냇물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느긋하게 흐름을 따르라.쉬지 말고 움직여라.머뭇거리거나 두려워 말라.작은 풀들의 말을 들었습니다.겸손하라.단순하라.'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