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사들이 외국계 증권사들의 투자 의견 하향 조정에 떨고 있다.골드만삭스는 지난 4일 대한항공에 이어 5일 포스코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날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주의 목표주가도 일제히 내렸다.특히 STX조선의 목표주가를 9만4000원에서 3만4400원으로 60% 이상 조정했다.

지난달 30일에는 UBS에 이어 맥쿼리가 조선업종 투자 의견을 하향 조정해 '검은 수요일'을 연출했다.증시 수급의 주도권을 외국인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계 증권사의 연이은 부정적 보고서가 시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투자 의견은 애널리스트의 고유 권한이지만 수익 추정이 너무 터무니없다는 주장이다.일각에서는 외국인들이 주식을 빌려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사서 되갚는 대차거래에서 발생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이 같은 보고서를 내놓고 있지 않느냐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외국계 잇따른 투자의견 하향

3일 연속 상승 가도를 달려온 포스코에 이날 급브레이크가 걸렸다.골드만삭스가 이날 포스코의 목표주가를 51만9000원에서 45만3000원으로 낮추고 투자 의견을 '매도'로 하향 조정한 때문이다.이 증권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폭이 시장의 예상치를 넘어서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조정 배경을 설명했다.또 "중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기 침체 위험을 감안할 때 올 실적 전망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

골드만삭스의 올 포스코 영업이익 전망치인 3조6667억원은 회사 측 전망치(4조8000억원)나 국내 증권사 컨센서스(4조7092억원)보다 20% 이상 낮다.포스코 관계자는 "수익 추정은 애널리스트 고유 권한"이라며 "실적으로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4일에도 대한항공의 투자 의견을 '매도'로 내렸다.승객수 증가세 둔화와 화물운송 수요 감소,유가 상승 등을 이유로 들었다.이날 씨티그룹도 한국전력의 목표주가를 4만5000원에서 3만4000원으로 내리고,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하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수익모델 한번 비교해보자"

국내 베테랑 애널리스트인 양기인 대우증권 기업분석부장은 이날 골드만삭스의 분석에 대해 발끈했다.그는 수년간 철강업종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양 부장은 "올 영업이익 3조7000억원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전망치"라며 "어떻게 나온 전망치인지 내 수익모델과 비교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그는 실제 국민연금 미래에셋자산운용 삼성투신운용 등 3개 기관투자가들에게 비교할 기회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그는 "골드만삭스가 작년에는 현대제철에 대해 터무니없는 수치를 제시하며 '매도'로 일관해 왔다"며 "국내 대형 기관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현대제철은 골드만삭스의 매도 의견에도 불구하고 작년 한 해 동안 134%나 올랐다.

최근 외국계의 잇따른 투자 의견 하향 조정에 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박종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 같은 '매도' 보고서는 결과적으로는 국내 증시 전망을 어둡게 본 외국계 기관투자가들이 보유 주식을 던질 명분을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외국계 헤지펀드나 기관투자가들의 대차거래 손실을 줄이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주가가 급반등할 때 '숏 커버링'에 나서지 못한 기관들은 큰 손실을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주가를 떨어뜨려 손실을 만회하려는 입장에서는 이런 보고서가 딱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기관투자가들의 구미에 맞는 보고서를 써내는 '정치 애널'이 있다는 말로 불만을 표시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