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폭행해 금품갈취 후 병원 데려다주다 붙잡힌 강도, 당신이 배심원이라면 형량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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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민들이 배심원으로 판결에 참여하는 국민참여 재판(배심제)이 12일 대한민국 사법 역사상 최초로 대구지방법원(법원장 황영목)에서 열린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 왔던 장면들이 올해부터 우리나라 법정에서도 실제 벌어지게 된 것.대구지방법원 관할 구역인 대구시 중구 등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남녀 중 무작위 선출 방식으로 뽑힌 230명이 배심원 후보다.
이들 중 30~40명이 실제 이날 출석할 예정이며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검사와 변호사의 '검증'을 무사 통과한 9명이 최종 배심원단으로 '일반인 법관' 자격을 얻게 된다.
오후 2시부터 본격 진행되는 이번 재판은 강도 상해죄로 기소된 이모씨(27·남)에 대한 공판이다.
국민참여재판은 중형이 예상되는 피고인이 신청할 수 있다. 검찰에 따르면 퀵서비스 업체 직원인 이씨는 지난해 12월26일 교통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구시 남구에 사는 A씨(70·여)의 집에 월셋방을 구하러 온 것처럼 속이고 들어가 금품을 빼앗으려 했다.
이에 A씨가 반항하자 이씨는 A씨를 폭행했고 A씨가 피를 흘리자 병원까지 데려다 주는 과정에서 이를 수상히 여긴 인근 주민에게 덜미가 잡혀 결국 강도 상해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이씨의 폭행이 금품 갈취를 목적으로 한 것이냐 여부와 A씨를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이 자수에 해당하느냐 여부.이씨는 국선 변호인인 전정호 변호사를 통해 A씨를 폭행한 것은 금품을 가지고 나오려다 A씨에게 설득당해 포기하고 나오는 길에 다른 이유로 A씨를 폭행하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를 업고 병원까지 간 것은 자수에 해당돼 형량의 감경 사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 변호사는 "피고인이 최대한 선처받을 수 있도록 배심원들을 설득할 것"이라며 "배심 재판이니만큼 문서로 써간 것을 읽는 수준이 아니라 사건 내용을 모두 숙지하고 즉흥적인 상황에서도 최대한 자연스럽게 변론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밝혔다.
검찰도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다.
대구지검 변창훈 공판부장 검사는 "재판에 출석할 검사들이 특별히 스피치 교육을 받았다"며 "모의재판 결과 배심원들이 피고인에게 관대한 경향이 있어 시각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등 범행이 계획적이고 잔인했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9명 배심원들은 변호사의 변론과 검사의 신문 과정을 지켜본 뒤 평의실로 이동해 법관의 관여 없이 독자적으로 유·무죄를 가린다.
만약 배심원이 만장일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법관과 함께 토의한 뒤 다수결로 결정한다.
배심원이 유죄라고 인정하면 형량을 토의하게 되며 이 자리에도 법관이 참석한다.
평의 결과와 더불어 이날 재판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평의 과정의 공정성.실제 지난해 1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있었던 모의 재판에서는 나이가 많은 배심원단 대표가 혼자 다른 의견을 가지고 나머지 배심원들의 주장을 방어하는 식으로 평의가 진행돼 공정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대법원의 이재석 형사정책심의관은 "배심원단 대표는 사회를 보는 사람이지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배심원들이 똑같은 발언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히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재판은 국민참여재판 전담부인 대구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윤종구)에서 맡는다.
박민제 기자/대구=김민지·김규환 인턴기자 pmj5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