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역사를 불과 5시간 만에 무너뜨린 숭례문 대참사는 그동안 몰랐던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관리 예산이 연간 2억원에도 못 미치고 그나마 대부분 인건비라는 것,문화재가 아니라 일반 건축물로 보험에 가입해 보험금이 9508만원에 불과하다는 것,그 흔한 스프링클러도 없이 소방장비라곤 소화기 8대와 상수도 소화전이 전부였다는 것,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중요 목조문화재 124곳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방재시스템 설치 우선 순위가 48위였다는 것,우리의 '국보 1호'가 지키는 사람도 없이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야 했다는 것을….

숭례문이 무너지자 사람들은 늘 그랬듯이 '네탓이오'를 외친다.화재의 초기 진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소방 당국과 문화재청은 서로를 탓하고 있다.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방재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문화재청을 탓하고,숭례문이 방화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1년 전 한 네티즌의 제보를 무시한 문화관광부도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책임이 없다'고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천하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필부(匹夫ㆍ보통 사람)의 책임'이라는 옛말을 들추지 않더라도,관계 당국에만 책임이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이미 무너진 숭례문으로 다음 날 득달같이 달려온 정치인들은 문화재 방재예산을 쥐꼬리만하게 편성한 책임에서 자유로운가.안타까운 시선으로 불길에 휩싸인 숭례문을 바라보던 시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무관심이 '국보 1호'에 대한 총체적 홀대를 초래하지 않았을까.숭례문의 '외로운 밤'을 몰랐거나 외면했던 언론과 시민단체,전문가들은 또 어떤가.

이번 대참사 앞에선 모두가 죄인이요,책임자다.정책당국과 실무 책임자들의 잘잘못을 가리는 일과 더불어 모두가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종합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일만 남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수업료를 냈다.낙산사와 그곳에 있던 동종,쌍봉사 대웅전을 잃었으며 창경궁 문정전과 수원 화성 서장대를 훼손당했다.전국의 목조문화재 가운데 국보ㆍ보물급 건물만 145곳이나 된다.산불이든 방화든 누전이든 일단 불이 나면 이들 문화재의 안전은 장담하기 어렵다.

따라서 신속하고도 획기적인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공무원들의 고질적인 예산 타령ㆍ인력 타령도 전혀 근거가 없지 않다.124곳의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예산이 지난해 15억원,올해 18억원이다.지금까지 방재 시스템을 갖춘 곳이 해인사 등 4곳에 불과하니 어느 세월에 다 할 것인가.문화재청이 추산하는 숭례문 복원비용 200억원이면 웬만큼 방재 시스템을 갖췄을 것이다.올해 문화부 예산(30억4904만유로)의 39%를 문화재 관리 및 보존에 쓰는 프랑스,각각의 문화재마다 열감지기기를 비롯한 경보설비와 물대포,스프링클러,수막설비 등 첨단 방재장치를 갖춘 일본이 부러울 뿐이다.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의 유기적 협조체제 구축과 문화재 방재를 위한 법령 정비 등도 시급하다.일본처럼 '문화재 방화(防火)의 날'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어찌할까(如之何),어찌할까 하지 않는 자는 나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한 공자의 말씀이 가슴에 와닿는 때다.

서화동 문화부 차장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