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미국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요즘 애용하는 단어는 '역풍(headwind·맞바람)'이다.인위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기업 환경이 어렵다는 걸 나타내기 위해서다.일부에선 경영 부진에 대한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사용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역풍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원조'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란 점에서 또 다른 관심을 낳고 있다.

제리 양 야후 CEO는 지난달 말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역풍'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올 매출 전망이 좋지 않다는 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다.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가 공개적으로 인수를 제안해와 역풍은 '쓰나미'가 됐다.

이에 앞서 릭 왜고너 제너럴모터스(GM) 회장은 지난달 17일 투자설명회에서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금 아주 심각한 역풍에 맞서 있다"고 현재의 어려움을 털어놨다.미국 4위 은행인 와코비아은행의 케네디 톰슨 CEO도 최근 "와코비아를 포함한 금융회사들은 지금 역풍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풍이란 말은 기상용어로 뱃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다.배가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바람이 불어 진행이 어렵다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을 표현한다.유명 CEO들이 입만 열면 역풍이라는 단어를 읊는 것은 역풍이 부는 것만큼이나 주변 환경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존재한다.조지 랙오프 버클리캘리포니아대 교수는 "몇 년 전부터 기업과 CEO들이 기상용어나 자연현상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며 "이는 다분히 회사 경영이 어려운 것은 불가항력적인 자연현상 때문이라고 항변하면서 비난을 피하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역풍이란 말을 월가나 기업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원조로는 그린스펀 전 의장이 꼽힌다.경기침체에 직면해 있던 1991년 그린스펀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시속 50마일의 역풍에 직면해 있을 정도로 경제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 번에 열린 회의에서 데이비드 물린스 당시 FRB 부의장은 "금리를 내리면 역풍이 순풍(tailwind)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비유적 표현을 이어갔다.벤 버냉키 FRB 의장도 작년 11월 "제반 여건이 역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해 그린스펀의 단어를 활용하기도 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