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근 < 항공대 교수ㆍ항공우주학 / 한국과학재단 우주단장 >

요즘 과학기술계는 정부조직개편으로 스산한 분위기다.40년 동안 유지해온 과학기술부라는 행정체제를 해체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기술자들이 더 허탈해 하는 것은 정치적 힘이 없어 또 한번 당했다는 박탈감 때문이리라.대부분의 이공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권력이나 큰 부(富)를 추구하고자 하진 않는다.

자긍심 하나 갖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를 지향하며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과학기술을 통해 국가경제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뿌듯해 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필자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공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있었다.이공계 분야에서 자긍심을 갖기 어렵고 연구 환경도 조악했다.연구의 전문성도 찾기 어려웠다.

이런 정도의 노력을 법학이나 사회과학 등 다른 분야에서 했다면 월등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많은 과학기술자들은 자식이 이 분야를 전공한다고 하면 도시락 싸고 다니며 말릴 것이라는 얘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쟁이' 또는 '공돌이'라는 속어로 비하하기도 한다.그만큼 노력에 비해 사회적 위치나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도 사회적 인식이 낮으니 누가 이공계 진학을 해 어려운 공부를 하겠는가.

십수년 전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원 일을 시작했을 때 들은 우스갯소리가 기억난다.연구소의 연구원은 돈이나 따오고 내부의 행정담당자들이 고학력의 연구원들을 고용해서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학력 이공계 연구원의 위상이 낮고 별 볼일 없다는 자조 섞인 얘기다.

위정자들도 과학기술만이 국가경제를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이라며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외쳐댄다.새 정부마다 과학기술 강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한다.정치도,경제도,외교도,과학기술도 결국은 다 사람이 하는 것이다.

각 분야의 전문인력이 신바람이 나서 일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들어 줘야 한다.과학기술 발전을 위해서는 별 볼일 없는 과학기술자들의 외침도 들을 필요가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과학기술의 미래와 산업과의 연계는 과학기술자들이 제일 잘 알지 않겠나.과학기술은 정치경제적 지원은 필요해도 정치경제적 논리로 발전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정치경제적 논리가 과학기술 발전을 담보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항상 이공계 전공자의 자긍심을 갖도록 독려하곤 한다.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주문한다.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찾아서 열심히 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한다.현재 잘 팔리는 과학기술 분야가 10∼20년 뒤에도 인기를 유지하지는 못한다.그만큼 현대 과학기술의 수명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는 일종의 틈새시장을 찾아 미래 지향의 과학기술 분야를 연구해야 한다.

미래의 과학기술 발전은 지금까지의 '따라잡는' 연구로는 불가능하다.창의와 혁신을 바탕으로 선도하는 연구 패러다임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21세기에는 융합과학기술이 대세를 이루는 사회가 될 것이며 이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기술의 융합도 요구한다.지금 세계는 지구온난화,에너지 고갈,고령화 등의 심화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학기술적 해결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해 '미래혁신과학부'와 같은 미래형 정부부처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자들의 의견을 보다 경청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제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