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미국 달러화 등 외화를 구할 수 없어 애태우고 있다.주된 자금줄인 은행들이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사태가 불거진 이후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인해 외화를 들여오지 못하고 있어서다.한국은행 등 외환 당국이 실수요 목적 이외의 외화 차입을 규제한 것도 외화 대출 시장을 경색시킨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기업들은 외환위기 이후 사실상 중단했던 설비 투자를 최근 재개하려 하고 있으나 외화 조달이 막히면서 설비를 제때 도입하지 못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선 한은이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외화유동성을 풀어줘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한은이 부정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당분간 현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서브프라임 이후 외화 대출 급감

14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 하나 신한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외화 대출 잔액은 지난해 6월 말 169억2200만달러에서 올 1월 말 159억6100만달러로 6개월 새 10억달러가량 줄었다.4대 시중은행의 2006년 말 외화 대출 잔액이 174억2500만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13개월 만에 15억달러나 감소한 것이다.

시기별로 보면 서브프라임 사태가 충격을 몰고 온 지난해 10월부터 급감 추세다.우리은행의 경우 작년 9월 말 40억7800만달러에서 올 1월 말 36억9000만달러로 4억달러가량 줄었다.같은 기간 신한은행은 53억6700만달러에서 51억1800만달러,국민은행은 46억100만달러에서 42억8600만달러로 각각 3억5000만달러와 3억8600만달러 정도 감소했다.

기업체에 외화 자금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산업은행의 외화 대출 잔액은 2006년 말 132억달러,작년 6월 말 140억달러,작년 말 158억달러 등으로 늘었다.산은 관계자는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두산의 밥캣 인수 금융에 12억달러를 지원한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상반기엔 8억달러 늘었으나 하반기에 6억달러 증가로 증가세가 둔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우리도 못 구한다"

앞으로가 더욱 문제다.달러를 공급해 주는 은행들이 달러를 구하지 못하고 있어서다.우선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의 조달이 완전히 막혔다.지난달 산업은행이 10억달러를 리보(런던은행 간 금리)에 1.45%포인트의 가산금리를 내고 조달한 이후 올스톱됐다.가산금리가 작년 7월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무려 1%포인트나 뛰어 조달비용이 크게 높아진 데다 돈을 빌려주겠다는 금융회사들도 사라진 상황이다.

일본시장도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올초 현대캐피탈이 사무라이본드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추진한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은 대출자를 구하지 못해 기채를 미룬 상태다.한국의 시중은행뿐 아니라 다른 나라 은행이나 기업들도 너도나도 일본시장을 노크하면서 전주(錢主)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말레이시아 등 제3국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수출입은행은 말레이시아 화폐인 링기트로 채권을 발행한 뒤 스와프를 통해 국내에 3억∼4억달러 정도를 들여오려고 시도했으나 최근 스와프 비용이 치솟으면서 작업을 중단했다.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기채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충분한 외화를 끌어들여 올 수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결국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진정되고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이 풀리지 않고선 외화 조달이 어렵다는 얘기다.김창록 산업은행 총재는 이와 관련,"하반기께엔 얼어붙은 국제 금융시장이 좀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